2011년 11월 17일 목요일

홍문종 생각 - 제자리가 제일이다

제자리가 제일이다

요즘 들어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는 주요 이슈는 단연 ‘한미 FTA 협상과 안철수 현상’이다.
하나는 ‘국익’을, 또 다른 하나는 ‘대통령 선거’를 모토로 한 의제인데 대한민국 사회의 관심이 온통 이 둘에 쏠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FTA 샅바싸움으로 일촉즉발 전운이 감도는 정치권은 안철수 변수로 요동치는 가운데 선거정국을 시계제로로 밀어붙이는 형국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논란의 와중에 FTA와 안철수를 잇는 ‘끈’ 하나가 생각의 고리를 끊고 튀어 나온다.
반가운 마음에 블로그 주제로 잽싸게 건져 올린다.

한미 FTA는 개혁개방의 관점에서 해석돼야 마땅하다.
역사는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선진의 힘으로 작동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그만 협상에 종지부를 찍고 또 다른 아젠다 발굴에 관심을 돌려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새 흐름을 막는 걸림돌로 인구에 회자되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할 요소도 있다. 우리가 대원군의 쇄국정책으로 개방의 기회를 놓쳐 정지돼 있는 동안 일본은 문호를 열고 선진문명을 선점했다. 그렇게 돌이킬 수 없는 우열의 간극이 생성된 것이다.

지금으로선 FTA 협상이 우리에게 어떤 대차대조표를 가져다 줄 지 알 수 없다. 다만 이익과 불이익의 경계가 최대한 공평해지도록 배려하는 독려는 있어야겠다. 이익이 나는 쪽은 불이익 측이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도록 살펴야할 책무를 지는 것도 좋겠다.
같은 맥락으로 안철수의 역할론을 짚어본다.

그는 자신에게 의미 있고, 재미있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는 것이 불확실한 21세기를 살아나가는 키워드라고 했다. 그늘지고 힘든 이들을 위해 돈을 쾌척하고 자신의 기량 껏 봉사하는 것을 자신의 사회적 채무로 규정하기도 했다. 세상은 그런 그를 각종 여론조사에서 경쟁력 있는 대선주자로 올려놓고 기대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일련의 행보로 짐작컨대 그 자신의 속뜻과 얼추 맞아떨어지는 진로같다.
그런데 나는 안철수가 자신에게 맞지 않은 길을 선택하고 있다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4선 국회의원으로 정치판에서 영욕의 길을 걸었던 이태섭 전 국회의원은 미국 MIT에서 촉망받던 과학도였다. 그가 만일 정치가 아닌 과학도의 길을 택했다면 대한민국의 스티브잡스가 될 수도 있었다는 생각을 한다. 한 때 인터넷 대통령으로 추앙받던 문국현 전 유한캠벌리 사장은 국회의원으로서의 꿈을 채 피우기도 전에 범법자의 신분이 됐다.
이왕 얘기 나온 김에 성공한 학자였지만 정치권에서는 별 재미를 보지 못한 이수성,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등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인물들이다.

안철수 식으로 따진다면 미국의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가 대통령 후보 0순위로 나섰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현실을 존중하고 지켰다.
정치를 하고 싶었던 스티브 잡스에게 “애플의 스티브 잡스지 정치인 스티브 잡스는 아니라고 만류하며 정치권에 발 들이지 않은 일이 스티브 잡스가 제일 잘한 일이라고 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물론 로스페로나 도널드 캠프 같은 미국 재벌들이 대통령이 되지 못하는 배경으로 남자들의 질투심을 지목하기도 한다. 돈 있으면 됐지 무슨 정치권력까지 넘보냐는 식의 시기심이 있단다.
우리의 현실이라고 다른 것 같지 않다. 실제로 FTA 등 주요 정치현안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그에게 대중이 짜증 섞인 질타와 의혹의 눈초리를 내보이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날카롭고 집요한 질문이 이어질 텐데 그 때마다 침묵이나 미소로 넘길 수는 없는 일이다. 가혹한 채찍질로 그의 말문을 열기 위한 노력들이 시도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정치지도자로서의 소신이나 철학을 밝히라는 요구를 외면하는 일이 계속된다면 대중은 더 이상 그를 연호하지 않게 될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통해 타인을 행복하게 하고 스스로도 행복해질 수 있다. 특히 여태까지 잘 해왔던 일이면 금상첨화다.
내가 만일 안철수의 친구라면 그에게 망설임 없이 권하겠다.
지금껏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가야할 길이라 생각하면 스스럼없이 도전했던 것처럼 그의 길을 가라고. 아무래도 정치보다는 기존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게 훨씬 나을 거라고.
더구나 FTA 정국에서 대한민국 IT 업계는 5천년 역사 이래 최고의 기회를 맞고 있다. IT의 성공이 대한민국 미래를 결정짓게 된다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엄청난 경쟁력과 함께 떠오르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선택은 돋보인다.
내 알기로 반기문 총장이 대통령 적임 후보로 정치권으로부터 러브콜 대상이 됐던 건 지난 정권 때부터의 일이다. 그러나 그는 쇄도하는 유혹에도 불구하고 흔들림 없이 유엔 사무총장 선거에 전심전력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사무총장 연임을 위해 분주하던 올해에도 그의 대통령 출마설이 꼬리를 물었다. 당시 방한 중이던 그는 자리를 함께 한 우리들에게 (사무총장)연임에 방해가 되니 제발 국내 선거에서 거론되지 않게 해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지나놓고 보니 그의 유엔사무총장 연임은 본인을 위해서나 국가를 위해서나 정말 탁월했다. 그가 지금 유엔을 무대로 보여주는 활약상은 한국의 대통령은 물론 그 어떤 정치 지도자보다 더 중요하고 의미있는 일이다.

그의 부친은 교수들이 정치판에 들어가는 것이 좋게 보이지 않는다며 지금까지 존경을 받고 살아온 아들이 정치판에 잘못 들어가 욕을 먹게 될까 노심초사하는 심정을 토로했다. 아들의 성격 자체가 정치판 보다는 공부하고 학생들 가르치는 일에 맞는데 그런 아들을 정치판에서 난리를 쳐서 끌어들여 고민하게 만드는 게 안타깝다는 취지의 발언도 남기셨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순진무구(?)하고 창조적 아이디어가 많은 이들에게 무덤이 되고 자긍심이나 자존심 따위는 아랑곳 없는 곳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분명 그의 역할이 있지만 정치권 진입은 좀 더 많은 고민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아직은 설익은 과즙을 맛보는 어설픈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결국은 시행돼야 할 FTA를 잘 추슬러서 우리 사회에 그늘진 곳까지 잘 비춰지도록 노력하는 것처럼 안철수 역시 뭔가 해야한다면 제일 잘 할 수 있는 최적의 자기자리를 찾으라는 조언을 남기고 싶다.

(2011.11.17.)
...홍문종 생각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