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23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인분, 그리고 최루탄

인분, 그리고 최루탄


국회 본회의장에 최루탄이 터졌다.

한미 FTA 비준안 표결처리로 긴장이 감돌던 와중의 일인데 여당의 표결 강행에 야당 의원이 거사(?)를 일으킨 것이다. 45년 전 6대 국회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국회 오물 투척 사건’이 그것이다.
1966년 정부가 ‘삼성 계열사의 ’사카린 원료 밀수사건’을 미온하게 처리하는 것에 불만을 품은 김두한 의원이 싸들고 온 인분을 국무위원 석을 향해 날린 것이다.
‘인분 투척’은 본인을 포함한 관련자들이 옷을 벗거나 사법처리 되는 성과를 보인 반면, ‘최루탄 투척’은 FTA 저지에 별 영향을 주지 못하고 미완의 소동으로 끝날 조짐이다. (당사자 처벌 여부를 두고 설왕설래하는 분위기다. 그런데 두 사건의 결과가 달리 나온 건 인분과 최루탄의 효과적 차이에서 비롯된 것일까?)

초선의원 시절, 노동법을 통과시키던 때의 과정들이 데자뷰처럼 스쳐 지나간다. 새벽 시간, 야당 의원들의 눈을 피해 국회 뒷문으로 들어와 표결에 참여하고 안도의 숨을 쉬던 기억이 생생하다.
여당은 강행하고 야당은 거부하고....그 때도 야당은 의회 일정을 거부하고 장외로 뛰쳐나갔었다.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전혀 낯설지 않은 국회의 현주소다.
‘인분’에서 ‘최루탄’으로 바뀌었을 뿐, 여야공수 상황만 뒤집혀 있을 뿐, 본질은 그대로인 채 정치가 흐르고 있는 것이다. 어찌 그 많은 세월이 흘렀건만 국회가 바뀌지 못했나하는 아쉬움이 있다.

너무 빤하게 의중을 드러내는 정치인들의 작위적인 작태를 보고 싶지 않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생각들이 내 안의 어떤 것들이 툭툭 건드리고 있는 느낌이다. 그래서였을까?
FTA 비준안이 처리되는 과정을 지켜보는데 갑자기 비감스러운 감정에 휩싸이는 경험을 했다.
그래도 국회하면 명색이 대한민국 사회의 최고 엘리트들이 모인 곳이고 둘째가라면 서러울 명망가들이 넘치는 지성의 집산지다. 그런 국회에서 들이미는 자화상이 지나치게 보잘 것 없다는 자괴감이 들었다.
민망하고 부끄러운 느낌이 울컥 서글픔으로 솟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차라리 눈 감아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미 FTA 건만 해도 그렇다.
솔직히 정치인은 물론 대부분의 국민 모두, 또 다른 형태의 FTA 결말을 생각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모두가 어차피 통과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으면서 시치미를 떼고 저마다의 주어진 역할에만 충실했다. 이미 이런 식의 수순을 밟기 위해 서로가 명분쌓기에 급급했다는 사실은 새삼스럽지 않다. 이미 나와 있는 답안대로 찬성 배역은 찬성을 위해, 반대 배역은 처절한 연기로 더 적나라한 비통함을 표현해내기 위해 올인했다. 저마다 자기 말만 해대는 상황극에서 정치인들은 정치 대신 연기를 했다.
이 역시 암묵적인 합의사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다.

그렇게 마냥 느릿거리더니 이제와서는 다른 사람만 문제있다고 손가락질 해대기에 바쁜 모습이다.
참내, 반칙도 이런 반칙이 없다.
FTA가 합의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처리되면 국회의원에 불출마하겠다고 결기를 보이던 초선의원들은 다 어디로 갔나 싶다. 참여정부 시절 그렇게 열렬히 국익을 이야기하며 FTA 처리의 당위성을 역설하던 의원들이 지금에 와서는 단지 야당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변심을 합리화하는 모습은 또 어떻고.
무엇이 최루탄을 동원할 만큼 절박하게 했는지를 논의와 토론으로 설득하려는 노력대신 국회를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만들어 놓고서야 결론을 내는 악습을 반복하고 있다.
고쳐보려는 의지는 별로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불합리한 요소가 국회 무용론을 외치며 새로운 정치 창출을 주장하는 장외 세력의 인기를 일정한 검증절차 없이 키우고 있는 건 아닌지 솔직히 걱정된다.

개인적으로 한미 FTA를 찬성한다.
국익을 위해 반드시 시행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다.
FTA 처리 과정에서 몰아붙여야 하는 한나라당의 안타까움도 백번 이해할 수 있고 반대할 수 밖에 없는 민주당의 고충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고함치고 아우성치고 밤새 토론하고 또 토론할 지언정 국회에서 단상을 점거하고 기물을 부수고 경호권 발동하고 급기야 최루탄까지 터뜨리는 폭력은 어느 이유에서건 안된다. 반대만을 위한 반대 찬성만을 위한 찬성은 없어져야 한다. 무엇보다 정치적 쇼로 연명하려는 꼼수를 더 이상 선례로 남겨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최소한 흑백 텔레비전, 아날로그 시대에나 통하던 방식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현실 인식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정치를 정화해 나가는 건 바로 국민의 몫이다.

(2011. 11. 23)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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