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8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 권위를 회복해야

 권위를 회복해야


중국 당국이 산업화로 야기된 사회적 부작용에 적극 대응하는 모습이다.
5년 안에 효자 100만 명 만들기 운동으로 사회적 물의를 빚고 있는 각종 패륜 범죄를 퇴치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인데 오죽하면 그런 방안까지 내놓게 됐을까 싶다.
중국의 고심이 단순한 남의 일로만 생각되지 않는다. 우리 역시 비슷한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처지이기 때문일 것이다.
인정하기 싫지만 우리 주변에도 패륜범죄가 그 검은 뿌리를 내린 지 오래다.
부모를 때리고 심지어 살해까지 하는 충격적인 극단의 패륜행각이 드물지 않다. 노인공경의 미풍양속도 빠른 속도로 그 당위성을 상실해가는 모습이다. 더 충격적인 건 붕괴된 교권이 목도되는 교육현장이다. 학생이 교사를 폭행과 희롱의 대상으로 삼는 사건이 더 이상 놀랍지 않을 만큼 만연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며칠 전만 해도 여중생이 교사의 머리채를 잡았다는 보도가 있었다.
물질만능주의와 지나친 경쟁 환경이 초래한 우리시대의 슬프고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됐을까 참담한 심정이다.
부모에 대한 효가 최대의 가치로 존중받고 스승이 무한한 존경과 신뢰의 대상이었던, 장유유서의 사회적 규범이 소통의 통로가 되어 중심을 잡아주던 시절에는 꿈에도 생각 못할 사건 사고들이 날마다 넘치고 있다. 풍요로운 물질에도 불구하고 해소되지 않는 갈증이 인간을 성마르게 몰아간 결과와 무관하지 않다. 부모에게 자식이, 스승에게 제자가, 어른에게 어린 사람들이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이 믿기지 않는 현실을 설명할 도리가 없다.
그렇게 우리 사회에서 어른의 가르침이 사라지고 있는 건 대단히 불행한 일이다.
봉변이 두려워 부당한 행실을 지적하고 바로잡아야 할 훈육이 그 역할을 포기하면서 기존 규범의 가치를 무너뜨리고 있다.
교사가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제자가 교사를 다스리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는 지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일단은 문제 학생을 피하고 보자는 처세가 대세를 이루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자식의 몫으로 당연시 되던 부모 부양도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부모가 자식을 상대로 ‘생활비를 달라’고 소송을 제기하는 가슴 아픈 세태와 마주치게 되는 현실이 그것이다.

그렇게 되기까지 점차적으로 권위가 상실되는 사회적 역할이 컸다.
정보통신 발달은 지식이 더 이상 어른들만의 고유 영역이기를 허용하지 않았다. 웹 검색 기술이 지식의 보유량을 결정짓는 주요 수단이 되면서 어른 보다 ‘똑똑한 아이들’을 양산하는 창구가 됐다. 상대적으로 ‘무식한 어른’이 경륜의 권위에 묻어가는 무임승차가 봉쇄되기도 했다.
권위의 실종은 더 이상 존중받을 수 없다는 신뢰 상실의 판정을 의미한다. 
주변에서도 단 한 번의 실수로 추풍낙엽 신세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만큼 엄격한 잣대가 준용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인기 절정의 강호동이 탈세혐의로 정상의 자리를 내놓게 된 것도 그에게 부여된 권위를 지키지 못한 반작용의 여파라고 할 수 있다.
권위의 결벽적인 속성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 할 것이다.

패륜을 비롯한 반사회적 행각들은 반드시 바로잡혀야 할 대상이다.
그 중 권위의 신뢰 회복은 빼놓을 수 없는 실천적 요소로 구성원 저마다의 책무의식에 대한 소명감이 그 해법이 아닐까 싶다. 모든 문제점을 남탓에서 출발할 게 아니라 무조건 스스로를 탓하는 관점으로 시작한다면 의외로 수월하게 답을 찾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인간은 어차피 서로의 관계 속에서 각자의 삶을 영위하는 사회적 동물이다. 그러나 인간의 개성이나 창의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최소한의 질서조차 희화화하는 행위를 영웅시 하는 풍조는 지양해야 할 것이다. 반면,
최대한 많은 이들의 자유와 행복을 보장하기 위해선 개인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법도나 금도의 세심한 역할이 막중하다. 그렇지 못할 경우 흐트러진 사회가 될 것이고 그 흐트러진 한 부분이 사회의 전체 기반을 흔드는 결정타가 될 수도 있음이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인구 밀도가 높고 개인의 욕구가 다른 사람과 상충될 가능성이 많은 상황일수록 기본적인 공공질서에 대한 관심은 아무리 많아도 결코 부족하지 않다.

서로를 존중하며 사라진 권위를 회복하자,
단 조급증은 치명적인 독약임을 명심할 일이다.

(2011. 11. 8)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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