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30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강원도 단상

강원도 단상

교수 연수 차 강원도에 다녀왔다.
애초엔 구제역으로 어려운 지역상황을 감안해서 연수일정을 다음으로 미뤄야 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러나 오히려 이런 때일수록 많이 찾아주는 게 지역민들을 위해 더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많아 결정된 일정이었다.
매번 갈 때마다 강원도 특유의 에너지로 충만해지는 기분이었지만 이번에는 평소와 많이 다른 분위기였다. 오는 7월 동계올림픽 개최지 결정을 앞두고 IOC의 현지실사가 평창에서 진행된다는데 민망할 정도로 착 가라앉은 모습이었다.
하긴 구제역 파동이나 도지사의 도중하차, 불투명한 지역경제의 불안 등의 우환들이 겹쳤으니 신명날 일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당장 도지사 공백이 가져올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지역민들의 한숨을 깊게 만들고 있었다. 특히 도지사의 도중하차로 알펜시아 리조트의 활로 모색에 제동이 걸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지역민들을 풀 죽게 하는 가장 큰 이유였다.

어쩌다 보니 알펜시아리조트에서 이번 일정의 여정을 풀게 됐다.
강원도정의 뜨거운 감자로 부각돼 있는 문제의 그 알펜시아 리조트에 말이다.
이용 소감부터 말하자면 실망 그 자체였다.
막대한 건설비용에도 불구하고 외형만 그럴 듯 했지 설비나 규모면에서 지나치게 부실했다. 동계올림픽 시설물로 사용하기에는 미흡하고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 한 두군데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슬로프가 짧았고 설질은 평균치 이하였다. 20도가 넘는 강추위 속에서 보드를 타기엔 형편없는 여건 때문에 엄청나게 어려움을 감수할 수 밖에 없었다. 새 건물이었는데 마감재는 지나치게 부실했다.
적어도 동계 올림픽을 제대로 치르려면 상당한 재정비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였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빛 좋은 개살구였다고나 할까.

알펜시아는 ‘세계적 명품’ 최고급 리조트를 지향하는 대관령 일대 4.91km²(약 148만 평)에 공사비 1조6836억원을 쏟아 부어 펼쳐낸 강원도의 야심작이었다. 지방자치단체 역사상 단일 규모로는 최대 사업의 중심체였다.
강원도는 동계올림픽 유치에 대비해 스키점프 경기장과 크로스컨트리 및 바이애슬론 경기장 등을 최신 시설로 지었다. 세계적인 호텔 그룹 인터컨티넨탈호텔과 홀리데이인리조트가 참여했고, 회원제 골프 코스 운영은 골프 매니지먼트회사 트룬골프가 맡았다. 퍼블릭(대중) 골프 코스인 알펜시아700 골프장은 전 세계 유명 코스를 본떠서 만들었다. 2540명을 수용하는 컨벤션센터, 630석 콘서트홀, 3200명 수용 규모의 워터파크 운영은 커닝햄그룹의 조언을 받아 이뤄졌다. 커닝햄은 드림웍스, 유니버설 스튜디오와 워너브러더스 테마파크 등을 만든 회사로서 알펜시아 리조트 명성에 힘을 보탰다.
그렇게 화려한 명성으로 출범했던 리조트였다. 아시아 최대 최고 최상이 되겠다는 포부와 함께 탄생한 리조트였다.
그러던 것이 이자와 운영적자를 합해 연간 600억원의 손실을 안기는 시한폭탄이 되고 말았다.
오늘 날 강원도재정파탄의 원흉으로 지목받는 신세로 전락해버리고 만 것이다.
화려한 출발이 무색할 만큼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알펜시아 리조트는 지금 백척간두에 놓인 신세가 됐다. 재기 가능성도 그다지 커 보이지도 않는다.
이 모두가 위정자의 부실한 정책판단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순간의 판단착오가 전 도민의 고통과 한숨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암울한 현실은 이 땅의 모든 위정자들이 타산지석으로 가슴에 깊이 새겨야 할 교훈이다. 위정자들이 정책 하나하나를 결정할 때마다 얼마나 많이 공들이고 심사숙고해야 할지, 자신이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지, 왜 이 모든 일들을 명심해야 하는지를 가슴 깊이 새겨야하겠다.

보드를 타면서 깨닫게 된 귀한 사실 한 가지가 더 있다.
보드타기엔 조금 늙은 나이임에도 프로의 경지에 올라있던 스키대신 보드를 선택한지 어언 5년여다. 이제 비로소 보드타기에서 자유를 얻은 것 같다. 그동안 뇌진탕 정도의 충격은 예사로이 감수하며 부단히 노력한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가끔씩 스키에 대한 미련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정형화된 귀족형태의 스키보다는 청년 같은 자유분망함과 넘치는 스릴이 주는 보드의 매력이 훨씬 큰 것 같다.
이번에도 다리가 뻐근해질 때까지 보드를 즐기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문제는 너무 추운 날씨였다. 답답한 것이 싫어 평소처럼 고글과 마스크를 준비하지 않았다가 낭패를 본 것이다.
찬바람이 얼마나 거센지 고글없이는 눈을 뜰 수 없었고 마스크 없이는 얼굴이 얼어붙어서 도저히 보드를 계속 탈 수 없었다. 별 쓸모없다고 생각했던 장비들이 거센 찬바람 속에서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똑똑히 알게 된 셈이다.
마찬가지로 작고 사소한 관심이 정말 힘들고 어려운 환경에 처한 이들에게는 결정적인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깨달음도 있었다. 한 사람의 작은 정성이 사회 전체를 따뜻하고 살만한 세상으로 만드는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마음 속에 소중히 담는 계기가 됐다.

일탈을 접고 돌아온 일상은 역시나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다.
빼곡한 업무 목록이 잠시 마음을 누르지만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니만큼 지혜롭게 잘 해결해 나갈 수 있으리라.
강원도 역시 지금의 어려움을 딛고 주어진 난제들을 술술 잘 해결해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다시금 펄펄나는 강원도의 힘으로 우리를 맞아 주는 환한 미소를 조만간 만날 수 있겠지.

(2011.1.30)
...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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