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20일 목요일

홍문종 생각 - 양지로

양지로

도박의 기원은 인류역사와 근간을 함께 해 왔다.
그리스 신화의 천지창조 과정을 보면 신들이 주사위 내기로 각자 관장할 구역을 나눴고 성경에도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의 옷을 주사위 던지기로 나눠 가진 로마병사에 대한 기록이 있다. 심지어 노르웨이와 스웨덴의 국경은 양국의 왕이 주사위 게임으로 결정됐다고 한다. 우리도 경주 안압지 부근에서 정6면체 주사위가 발견된 적이 있는데 이를 통해 1400년 전 통일신라시대 당시에도 지금과 같은 형태의 주사위로 도박을 한 사실을 밝힌 바 있다.
매국노 이완용과 이지용이 ‘희대의 화투대왕’들로 불릴 정도로 화투에 열중했고 특히 이지용의 저택은 ‘조선에서 가장 거대한 판돈이 오가는 도박장’으로 유명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혹시 나라 판 죄책감으로 현실을 도피하기 위한 차원은 아니었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감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투 자체가 우리의 저항의식을 약화시키기 위한 일본의 술수 차원이었던 만큼 매국노들의 적극적인 친일행위일 가능성이 더 클지도 모르겠다.
따지고 보면 도박은 그동안 시대와 지역을 불문하고 생활 속 경험으로 익숙해진 유희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던 것을 새삼스레 불법, 합법의 잣대로 가르려 하니 모호한 부분도 있다.

원정도박 혐의로 물의를 빚고 해외를 떠돌던 신정환의 귀국으로 또 다시 난리법석이다.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다.
졸지에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할 범법자로 전락한 그의 모습이 많은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 초췌해진 모습으로 연신 허리를 굽히며 많이 혼나겠다고 했지만 상황을 돌이킬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같은 날 감사원은 강원랜드 카지노에서 최근 3년간 평일에 60차례 이상 출입하며 상습 도박을 해 온 370여명의 공직자 명단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조만간 3000만원 이상을 써 VIP 회원이 된 이들과 각 기관 회계 담당자나 고위직을 중심으로 자금 출처에 대한 정밀 조사에 들어갈 예정이란다. 그동안 도박에 연루된 연예인이나 공무원 문제가 한 두 번이 아니기 때문에 다음에는 또 무슨 일로 놀라게 될지 모르겠다.

통상적으로 도박을 하게 되는 이유에 대해 흥분과 자극, 일상으로부터의 일탈, 타인과의 사회화, 돈 등을 들고 있다. 스스로 결정하고 권한을 행사하려는 욕구의 실현 차원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면을 들여다보면 다른 이유를 찾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건
동물도 도박이 주는 쾌감을 느낄 수 있다는 영국발 기사다. 비둘기 실험을 통해 동물들도 커다란 보상에 유혹을 느끼고 기꺼이 위험을 감수함으로써 심장박동수가 최고조로 올라갈 때의 ‘가슴떨림’을 즐기고 있다는 사실이 입증됐다고 하는데 사실이라면 도박에 대한 관념을 새롭게 정리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인간의 고독에 근원적인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실제로 사람들이 더 많이 외롭고 쓸쓸해 하는 것 같다.
세분화되고 전문화되면서 갈수록 복잡다기해지는 사회적 환경이 도박중독을 양산하는 직접적 원인이 아닐까 싶다. 여러 사람이 공통적으로 함께 모여서 일했던 과거와는 달리 동등한 위치에서 독자적으로 저마다 독립된 영역을 처리하는 환경이 늘어나면서 본의 아니게 고립되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도 사실이다.

도박중독, 역시 무섭다.
인기 절정에서 아쉬울 것 없던 젊은 연예인의 인생을 단숨에 삼켜버릴 정도의 위력이니 가히 놀라운 독성이다. 한번 빠져들면 헤어나기 어렵고 그 오랜 시간을 통해 끈질긴 생명력으로 버텨온 저력(?)으로 봐서 앞으로 도박이 근절될 가능성도 없어 보인다.
어차피 공존할 수 밖에 없다면 도박을 없애는 것 보다는 운영의 묘미를 살리는 게 더 현명하다는 생각이다. 폐단을 최소화 하는 노하우를 생각해 내는 게 중요하고 지금이 바로 그 시점이 아닌가 싶다.
음성적인 사행사업 근절을 위해 사회전체가 감시자로 나서야 한다. 음지가 아닌 양지에서의 활성화가 부작용을 줄이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도박을 목표로 한 게임과 일반 게임을 별도의 기준으로 관리하고 있는 일본의 경우를 참고해도 좋을 듯하다.

도박을 양지로 끌어올리려는 정부의 의지와 역할이 중요하다.
도박장 출입회수나 베팅액수를 적당히 조절하는 데 있어 철저한 기준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관리한다면 도박을 기존과는 많이 다른 개념으로 풀어낼 수 있다는 생각이다. 더구나 국내 도박 환경을 국민오락과 건강, 스트래스 해소라는 관점에 맞춰 접근하면 해외원정도박은 물론 국부 유출을 방지에도 상당부분 도움이 될 수 있다. 감정이나 심리상태, 사회적․ 재정적여건, 신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행동이나 상황을 피하면서 도박을 레크리에이션의 일환으로 허용하고 관리하는 것이다. 문화예술 공간을 넓히는 등의 방법으로 외롭고 지친 사람들에게 탈출구를 만들어주는 배려도 국민을 도박중독으로부터 구해낼 수 있는 적극적인 대처가 될 수 있다.

불법행위를 단죄하고 책임을 묻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최소한 국민들이 지금 무엇 때문에 지쳐있는 건지 알아보기 위해 고민하고, 달래주기 위해 노력하는 정부의 성의가 더 필요할 때다. 관민이 마음을 합해 더 이상 이 땅에서 도박으로 피눈물을 흘리는 일이 없도록 만들어보자.
도박의 양성화까지는 아니더라도 양지로 끌어내는 노력을 시도해보자.


(2011. 1. 20)
.....홍문종 생각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