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5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배려가 왕도다

배려가 왕도다


<블로그 독자 여러분, 기뻐해 주시라. 저, 홍문종이 인기 짱인 카운슬러가 됐다.>

직업 때문인지 개인적 특성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근래 들어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실제로 학업을 고민하는 학생부터 사업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주로 성적, 진로, 직장, 결혼, 가정, 사업 등 인생의 전반적인 문제점에 대한 해결을 구하며 나를 찾고 있는 현상이 두드러지는 요즈음이다.

오늘만 해도 여러 명의 지인을 만나 어려워진 회사경영이나 원활하지 못한 가정 문제를 고민하는 하소연을 들었다.
그래봤자 열심히 들어주고 함께 고민하는 정도다. 그런데도 나를 찾는 이들이 날로 늘어나고 있다.
곰곰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나의 주특기 덕분인 것 같다. 거기다 나름대로 진정성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려는 나의 성실성이 상대방에게 위로가 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이러다 조만간 카운슬러계의 지존으로 명성을 날리게 될 것 같은 예감이... 여기 김치국 한사발이오!!)
상담을 하다 보니 생각보다 세상이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본의 아니게 다른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게 되면서 간접경험으로 오히려 세상을 배우는 덤을 챙기는 재미도 꽤나 쏠쏠하다. 그동안 우리의 사회적 패턴은 확실히 많이 변했다.

대표적인 변화는 집단적이고 물질 위주로 흐르던 기존 질서 대신 개인의 감성과 정신적 추구가 더 큰 가치로 평가되고 있다. 개인의 만족도나 정신적 평화가 가족이나 집단의 안위보다 우선시 되거나 행복의 주된 주제로 설정되는 자체가 낯설지 않은 분위기다. 기존의 사회적 질서나 가치가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기준으로 빠르게 전환되는 현상이 새로운 규칙으로 형성되고 있는 정황도 빼놓을 수 없겠다.
이제는 뭐든지 개인의 개성이 우선인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

객관적인 정황 보다는 주관적인 동의가 판단의 중요한 근거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평양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라는 말이 정말로 실감난다. 아무리 완벽한 행복의 요소를 갖췄다고 해도 당사자의 용인이 없다면 그건 행복이 아닌 것이다.
그런 정황에 긍정적인 측면만 있는 건 아니다.
독특하고 주관적일 수 밖에 없는 개인취향을 존중하다 보면 모두가 만족할만한 합의점 도출이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자칫 사공이 난립해 배가 산으로 가거나 지루한 줄다리기로 적절한 시기를 놓쳐 낭패를 볼 수도 있다. 극단적인 예가 되겠지만 심지어 사제지간 관계에서조차 개인 존중이 부적절한 형태로 표출되는 광경을 적지 않게 목격하게 되는 현실이다.
그렇다고 무력이나 권력의 힘을 빌어 무조건 압박하고 강요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다.
강요의 형태로는 절대 대중의 동조를 이끌어 낼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특히 지도자의 리더십에 있어 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한 사안이다. 수많은 지도자가 실패한 배경도, 교실에서 좋은 교육이 일어나지 못하는 이유도 다 여기에 있다.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대중 설득이 쉽지 않은 것은 개인의 입장이 고려되지 않은 원인이 가장 클 수 있다. 개개인의 납득과 동조를 얻어내지 못하면 한낱 빈 구호로 치부될 수 밖에 없다. 지도자가 제시하는 미래 비전이 반향을 얻지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 다. 결과적으로 타협과 동의가 리더십의 성공여부를 가름하는 주요 변수가 되는 셈이다.
이는 새해가 되면서 이런 저런 목적으로 2012년 선거판을 준비하느라 분주해진 사람들도 귀담아 들어야 할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수많은 정책을 담은 공약들이 쏟아져 나올 테지만 개개인의 행복을 배려하지 않고는 아무리 훌륭한 내용을 담는다 해도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유권자의 마음을 얻을 수 없는 결정적 하자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상대의 마음을 열고 타협과 동의를 얻어낼 수 있을까?
답은 간단하다. 역지사지 입장에서 상대를 헤아릴 수 있는 눈높이로 접근해야 한다.

상담하는 과정에서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상담은 사람들의 애로사항을 들어주고 공감하는 것만으로 소기의 목적이 달성된다. 정책이나 공약을 입안하는 과정에서도 다양한 계층을 찾아다니며 그들이 말하는 어려움과 문제점을 수렴하고 거기에 따뜻한 배려를 덧입힌다면 그 공약이나 정책은 당연히 성공하게 돼 있다.
특히 선거를 통해 유권자의 표를 먹고 사는 정치인의 경우, 대중을 향해 귀를 열어 크게 듣겠다는 자세만으로도 절반의 성공이 보장된다. 거기다 따뜻한 가슴과 눈높이를 맞출 수 있는 지혜로운 처신이 가능하다면 금상첨화다.
귀가 솔깃해지는 희소식일 것이다.

서로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가 사이가 틀어져 버린 '여우와 두루미'라는 이솝 우화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여우가 납작한 접시 대신 목이 긴 병으로 주둥이가 긴 학의 식사 방법을 배려했다면, 두루미가 목이 긴 병으로는 결코 음식을 먹을 수 없는 여우의 입장을 배려했다면 이들의 우정은 더욱 공고해졌을 것이다.
국민을 대하는 정치인의 마음이 이와 같다면 최소한 국민으로부터 외면 당할 걱정은 안해도 될 것이다. 실천하기까지 어려울 것도 없다. 그저 존중하고 배려하면 된다.
그렇게 한번, 굽어진 정치현실을 바로 펴는 시작을 지금 시도해 보면 어떨까 싶다.
아무리 생각해도 배려가 왕도라는 건 만고의 진리임에 틀림없다.


(2010.1. 5)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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