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25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 '나의 가장 나종 지닌 것'

'나의 가장 나종 지닌 것'

박완서 선생께서 영면하셨다.
많은 이들의 아쉽고 그립고 안타까운 동동거림을 뒤로 한 채 홀연히 떠나 가셨다. 이 땅의 강퍅한 가슴들까지도 뜨겁게 울리는 위력을 발휘하면서 그렇게 이승과의 인연을 접으셨다.
역시나 선생은 마지막 가는 길도 남다른 흔적을 남기셨다.
소박하게 마지막 길을 가겠다는 고인의 유지에 따라 조사나 추모사 낭독 등 일체의 격식이 배제된 채 진행된 영결식도 그렇고 병마와 싸우면서도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현역이고자 했던 노작가의 ‘직업근성’도 그랬다. 가난한 문인들에게 절대로 부의금을 받지 말라고 신신당부 할 정도로 타인에 대한 따뜻한 배려를 잊지 않았던 어른의 모습으로도 그랬다.
사람이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의 의미가 바로 이런 건가 싶기도 하다.

오랜 만에 반가운 얼굴을 뵙는 모임 자리에서도 온통 타계한 박완서 작가 얘기뿐이다. 연로하신 분들이 많은 모임인데 대부분의 어르신들이 박완서 작가를 잘 알고 계셨다. 뿐만 아니라 서로의 집을 왕래할 정도의 친분으로 개인적인 삶의 공간을 깊숙이 알고 계시는 분들도 적지 않았다.
남편과 아들을 앞세운 비극적인 개인사를 비롯해서 남들에게 언제나 상냥하고 다정했지만 어딘가 짙은 어두움이 배여 있는 듯한 표정, 쓰라린 가정사를 승화시킨 듯한 주옥같은 작품에 이르기까지 고인에 관한 많은 후일담들이 쏟아졌는데 대부분 수긍이 가는 이야기들이었다. 살을 에는 고통 속에서 진주가 만들어지듯 인생에서의 아름다운 결과물도 숱한 어려움과 역경을 딛고 난 후에야 손에 넣게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됐다고나 할까.

고인의 사인으로 알려진 담낭암이 화제거리로 대두되는 가운데 비교적 건강했던 고인의 갑작스런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을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방사선 치료의 위험성(?)이 거론되기도 했다. 동병상련의 심정이었을까? 수술 경과가 좋아 거의 완치단계였는데, 본인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방사선 치료가 강행되는 바람에 연로하고 병약한 환자가 이를 이기지 못해 명을 재촉했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들이 터져 나왔다.
그 다음에는 이구동성으로 우리나라 병원과 의료진들의 문제점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의사들의 불친절과 환자에 대한 무관심, 더 나아가 지나친 의료수가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 전반에 관한 성토가 이어졌다. 미국이나 일본의 진료를 받아본 경험을 들어 우리보다 더 값싸고 친절하고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철저히 이행하는 외국 의사들의 투철한 직업의식을 예로 들어가며 성토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그러다 결국은 우리가 나름대로 세계사에 족적을 남기기 위해서는 국민들이 고매한 인품까지는 아니더라도 기본적으로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인격을 조성하는 풍토가 필요하다는 얘기로 끝을 맺었다.

어떤 상황에서건, 어떤 인간관계에서건 갑과 을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 때 그 때 입장에 따라 갑이 되기도 하고 을이 되기도 한다. 그런 식으로 보자면 갑의 입장에서 내가 했던 처신이 을의 입장에 처한 내 몫으로 고스란히 되돌려지는 게 아닐까 싶다. 특정 상황에서 내가 받은 대접이 섭섭하다고 느껴지는 순간, 섭섭함에 방점을 두기보다 내가 남들을 서운하게 하지 않았나부터 돌아보는 자세가 우선돼야 하는 이유다.
수 많은 사람들이 이 박완서 선생과의 이별을 아쉬워하는 것도 결국은 그녀가 세상에 뿌린대로 거두는 결과에 다름 아닐 것이다.

모임에서 돌아오면서 내 모습을 돌아보았다.
나는 얼마나 남을 배려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남의 입장을 얼마나 존중하고 또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가. 어르신들에게 성토대상이 된 의료진처럼 시간에 쫓긴다는 이유만 내세워 그저 하고 싶은 대로 또는 판단하는 대로 주변인(학생이 됐건 지역구민이 됐건)들을 일방통행식으로 밀어붙이지지는 않았나.
그렇게 해서 내가 얻은 결론은 우리가 미래사회의 희망을 이야기하려면 각 개인마다 완성된 인격체로서 성숙한 시민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어떤 의도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독약도 되고 구명약도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나 자신은 물론 주변의 지인들과 함께 한번쯤 주제삼아 생각해 볼 계기를 마련해봐야겠다는 결심으로 마음가짐을 새롭게 다잡아본다.
세상을 살면서 이왕이면 좋은 종자의 씨앗을 뿌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나 역시 많은 이들의 아쉬움 속에서 내 생의 마지막을 맞게 되기를 소망한다.
그러기 위해선 내 인생을 가치있게 만들기 위해 '나의 가장 나종 지닌 것'을 늘 갈고 닦는 노력의 끈을 놓지 말아야겠지.

그나저나 그토록 그리워하던 아들과 남편 곁으로 가셨으니 선생님, 많이 행복하시겠지요?

(2011. 1. 25)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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