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2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행복하려면

행복하려면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세계 경제규모 13위.
괄목할만한 대한민국 경제 지표다.
전 세계가 ‘한강의 기적’을 배우겠다며 대한민국으로 몰려드는 정황인데도 정작 당사자인 우리 국민 상당수는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있단다. 기회가 되면 다른 나라에서 살고 싶을 만큼 국가적 자부심이 결여된 것으로 조사됐다니 아이러니다. ‘돈에 대한 집착’과 ‘안보 불안’이 낮은 행복지수의 결정적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는데 국가와 정치에 대한 불신이 작용하는 바가 적지 않은 것 같다.
이는 2010년을 보내는 연말 송년 모임 자리에서도 자주 접하게 되는 여론이다. 과거에 비해 모든 여건들이 월등히 나아졌는데도 국민의 행복지수가 오르지 않는 데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일종의 국가적 자부심의 향방과 무관하지 않다는 중론이다. 우리보다 훨씬 열악한 환경에 처해있는 인도네시아나 베트남 국민들은 스스로를 행복해 한다는 데이터가 있다.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저서로 우리 사회에 ‘정의 신드롬’을 몰고 온 하버드대학 마이클 샌들 교수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비슷한 지적을 했다.
샌들 교수는 연평도를 공격해 온 북한에 대한 우리의 즉각적인 대응이 ‘정의’의 본질이지만 신중함과 균형을 이룬 이성적 판단 역시 정의의 또 다른 결론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장기적인 안목과 큰 틀 차원의 접근이 우리의 안보불안 해소에 더 바람직한 해법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북한에 대한 분노와 억울함이 크겠지만 침고 기다리는 인내심이 진짜 정의가 될 수도 있다는 의미이겠다. 정치지도자에게 조급하게 독촉하며 밀어붙이기보다 장기적으로 안정될 수 있다는 확신 아래 보복을 유예해보는 것도 긍정적 전략의 한 차원이 될 수도 있다는 견해였다. 그런 맥락에서 국민으로부터 불신받고 있는 정치권의 고민도 함께 진행돼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의 시장 중심은 결국 개인적 소비를 토대로한 지나친 욕심 때문에 시장이 제기능을 잃고 급기야는 사회적 혼란을 야기 시켰다는 샐든 교수의 지적은 일리가 있다.
샐든교수의 지적처럼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어있는 시장이 사회적 통합, 안보, 평등, 커뮤니티와 개인의 권리에 대한 존중 등 고귀한 사회, 정의로운 사회에 필요한 가치들을 훼손시켰다는 책임의식이 문제 해결의 동기로 작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스스로의 책임이라는 인식아래 부단히 자기 역할을 찾는 것이 시장의 기능을 긍정적으로 되돌리고 공정사회에 대한 자부심을 회복시킬 수 있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는 그의 주장에 동의한다. 한국의 정치 불신 역시 지나치게 경제적인 부분을 중시하면서 정의와 같은 문제를 소홀히 한 결과로 진단하기도 했는데 우리 모두가 귀 기울여야 할 대목이라고 본다.

우리에게 불행한 역사가 존재하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질곡의 역사 속에서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인간 본연의 속성을 드러내기도 했고 숨 가쁜 여정을 달려오기도 했다. 아직은 그 긴 터널을 다 벗어났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자신 스스로를 격려하고 다독거리면서 소중하게 생각하는 작업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다.

상대적 박탈감을 배려하는 소비패턴과 공정과 정의를 위한 나름대로의 노력을 통해 스스로가 먼저 바뀌려는 노력의 선행도 국민적 자부심을 살릴 수 있는 한 해법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북한에 대한 대응에 있어서도 결국은 마찬가지다. 누구가 해결해야 한다는 강박증 보다는 우리 국민 스스로에 달려있다는 확신을 갖고 자신에 대한 신뢰감을 높일 수 있어야겠다. 우리가 결국 해낼 수 있다는 자긍심 같은 것이 문제해결의 최대 지름길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나 역시 반세기 넘게 살아온 지난 삶을 돌아보면 덜미를 잡히는 고비가 적지 않았다.
생각자체가 복잡한 만큼 우여곡절의 상흔이 더 치명적인 아픔으로 다가올 때가 많았다.
그러나 단 한번도 스스로에 대한 확신의 끈을 놓은 적이 없었던 나다.
지금 그것은 내 삶을 지탱시키는 자부심의 근원이 되었다. 내가 지금까지 존재할 수 있는 이유라고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은, 자랑스러운 나의 신념적 구호가 되었다.

2011년 화두는 자부심 회복의 전초전 차원에서 ‘자중자애’로 삼아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다.
송구영신의 시점에서 저마다 자기 삶에 충실했던 증거를 들어 스스로를 대견해하고 자부심을 갖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그 결과가 스스로에 대한 신념과 신뢰를 키우는 계기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스스로를 사랑하라는 말이다.
그런 변화들이 각자의 인생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동기가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나 신념은 단지 긍정적인 사고가 성공 국면에서 더 큰 의미로 다가오기를 바라는 마음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성공한 주변인물을 보면 대부분 자기 스스로를 믿고 소중하게 여기는 공통점이 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성공한 사례를 본 적이 없다.

자기반성이 필요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끊임없는 자기 성찰을 통해 자신의 단점을 분석하고 개선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은 ‘성공’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요 키워드다. 불변의 법칙이다.
인생의 참된 가치는 속도가 아니라 방향에 있다고 한다.
속도는 욕망이지만 방향은 가치를 가늠하는 바로미터가 된다는 측면에서 가슴에 담아둘 의미를 찾게 된다.
행복을 지향하는 또 하나의 선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11. 1. 2)
....홍문종 생각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