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 24일 목요일

홍문종 생각- '방자전' 유감

'방자전' 유감



신문을 보니 백용호 국세청장이 청와대 참모들은 사고가 유연해야 한다며 영화 ‘방자전’을 보라고 했다는 기사가 있었다. 젊은이들의 트랜드를 이해하는데 그만이라는 얘기도 덧붙여져 있었다.

청와대 참모는 아니지만 높으신 분의 ‘추천사’에 귀가 솔깃해져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방자전을 보러갔다. 솔직히 ‘어떤 영화길래...’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영화가 상영되는 2시간 내내 ‘숨은그림’ 찾는 기분으로 스크린에 집중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방자전은 평년작 수준도 못 된다는 생각이다. 심오한 기대를 가지고 봤다간 본전 생각나기 딱 좋은 영화였다. 그냥 생각을 출장 보내고 가볍게 웃고 즐기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19금 ‘성인용’ 오락영화였다.

물론 영화사에서 홍보카피를 통해 주구장창 주장했듯, 기존의 춘향전을 완전히 뒤집어 통상적인 관점을 탈피한 시도였다는 점은 높이 살만했다. 그러나 영화를 만드는 미숙한 손길이 그나마 신선한 아이디어를 개발의 편자로 만들고 말았다. 감독의 의도는 알겠지만 의욕이 앞선 나머지 일관성 없는 돌출과 억지의 연속인 설정 등으로 수습이 안되는 영화를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음담패설이나 뜬금없는 정사신, 어설픈 멜로로 대충 얼버무리려 한 혐의가 짙다. 감독이 시나리오 작가 출신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완성도가 떨어지는 내용이었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훈장의 고리타분한 잔소리 정도로 받아들여질까 봐 살짝 걱정된다.)




왜 하필 ‘방자전’이었을까?

영화가 다 끝나도록 백 청장이 청와대 참모들을 위해 조언했던 ‘실체’를 찾아낼 수 없었다. 이 영화의 무엇이 유연한 사고를 기르고 젊은이들의 트랜드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는 건지 답이 안 나왔다. 처음엔 내게 문제가 있나 싶었다. 나의 과문함이 백 청장의 심미안을 따라잡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 말고도 영화를 보면서 숨은그림찾기를 한 사람들이 또 있었다는 사실을 영화가 끝나고 나오면서 알게 됐다. 옆자리의 앉아있던 관객들이 백청장의 인터뷰 내용을 화제삼아 나누는 대화가 들렸던 것이다.

“그 국세청장, 영화 제작자 중에 아는 사람 있는 거 같아. 영화 ‘흥행 도우미'를 자처한 게 아니라면 어떻게 이 딴 영화를 청와대 참모들한테 보라고 할 수 있겠어?”



그들의 대화로 숨은 그림을 못 찾은 원인을 내 쪽에서 찾을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부진한 한국영화산업을 도우려고 일부러 ‘방자전’ 얘기를 꺼냈나 싶었다.

이런 혐의를 받게 된 건 순전히 본인 잘못이다.

방자전의 부실함을 염두에 뒀다면 언론에서 방자전을 거론하는 과정이 좀 더 신중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더구나 방자전을 통해 요즘 젊은이들의 트랜드를 이해하라는 주문 역시 사려 깊지 못한 측면이 많다. 예술적 완성도는커녕 성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막장 영화가 요즘 젊은이들의 트랜드를 대체한다고 단정짓는 건 자칫 그들에 대한 모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불쾌해졌다. 그의 방자전 추천이 마치 목적 달성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된다는 말로 들렸다. 절차와 과정을 무시하는 ‘실적주의’가 우리사회에서 여러가지 불합리함을 낳는 주범이 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할 때 정제되지 않은 공인의 ‘자기현시욕’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는 늘 명심해야 한다. 사회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공직자 신분에 대한 더 큰 책임감이 필요하다는 현실인식도 잊지 말아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든지 스스로도 모르는 가운데 ‘악의 축’으로 전락하는 지독한 악몽을 꾸게 될 것이다.



아무래도 그는 영화를 제대로 보지 않은 게 틀림없다.

어쨌든 방자전은 유감이다.
(2010 .6.25)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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