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 9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고독 헤는 밤

고독 헤는 밤



알 수 없는 지독한 우울함에 시달리는 듯한 목소리를 들었다.


더 이상 잘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는 좌절감에 갇혀 버렸다는 호소였다. 아무도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고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것 같은 상실감이 자신을 벼랑 끝으로 밀어내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절박한 목소리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극심한 외로움에 시달리고 있는 지 알 것 같았다.


당사자로선 죽을 것 같지만 정작 병명조차 제대로 부여받을 수 없어 가중처벌의 혹독함이 더해지는 고독증후군의 증세가 새삼 상기됐다.


고독의 마수에 걸린 그의 현실이 몇 마디 어설픈 위로로 도움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나는 침묵을 택할 수 밖에 없었다. 고독이 동반되지 않은 삶은 개 돼지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며 고독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 사상가나 철학가가 있었다는 말을 해 주고 싶었지만 고통 앞에서 무슨 힘이 될까 싶었다.





내게 있어 고독은 오래 묵은 친구 같은 존재다.


보통 하루면 기십명을 만나야 하는 나의 일상을 염두에 둔다면 군중 속 고독인 셈이다.


사람들과의 어울림도 좋은 편이고 친구관계도 원만한데 많은 사람을 만날수록 혼자라는 생각에 빠져들 때가 많으니 가히 병이라면 병이라고 하겠다.


초등학교 때부터 전학을 많이 다니다 보니 홀로 있던 시간이 많아서 생긴 습성일까 싶었는데 결국 나의 의식 밑바닥에 꽁꽁 매어놓은 강력한 자아가 나를 고독의 세계로 떠다미는 결정적 인자라는 선에서 결론을 지었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심야를 좋아하고 그 동반자인 고독을 즐긴다. 유학준비를 하던 5년과 10년의 유학생활 동안 집중하기 쉽다는 이유로 밤새우기를 일상화하면서 생긴 습성과 무관하지 않다. 나이가 들면서 고쳐보려고 노력을 안 해 본 것도 아닌데 결국은 원점이어서 습관으로 받아들인 지 오래다.





고독하다는 건 아직도 스스로에게 희망이 남아있는 징조라고 어느 시인은 노래했다. 어쩌면 그 자신 지독한 우울증에 시달리던 끝에 얻을 수 있었던 '득도의 현장'일 수도 있다. 실제로 고독이 우리에게 인생 전반에 대해 돌이켜 성찰 시키고 현실인식을 가다듬을 수 있게 하는 순기능으로 작용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굳이 고독을 좌절의 끝으로 몰고가서는 안되는 정황에 다름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적절한 대응이 가능하다면 고독은 고통을 주는 '가해자'가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실제로 고독을 컨트롤 하는 힘이 있다면 그 결과는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이 입증된 바 있다. 이 시대를 이끌었던 위대한 지도나나 철학자들이 고독의 극한 상황을 뛰어넘어 자신이 가고 싶은 길을 걸어간 정황은 수두룩하다. 그들의 선례가 고독을 더 이상 기피 대상으로만 삼을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웅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고독이 희망의 또 다른 이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내일은 내일의 해가 떠오르게 돼 있다.


고독해서 너무 외로워서 우울의 늪에 빠져 죽을 것 처럼 고통스럽다는 친구에게 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달뜬다. 태양이 떠오르기 전에 행여 해가 사라질까 봐 근심하거나 단정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고 말해주고 고독을 매개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엄청난 힘의 배경도 설명해줘야겠다. 우리가 가진 이 내면의 보석이 얼마나 귀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존재인지도 열심히 공들여 알려야겠다.


고독을 희망의 키워드 삼아 헤아리는 이 밤, 가슴에 들어와 박히는 총총한 기운이 새롭다.

( 2010. 6. 9)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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