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 6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선생님, 안녕히 가세요

선생님, 안녕히 가세요


고등학교 은사님 부음을 받고 장례식장을 다녀왔다.
대광高 시절, 우리들에게 수학을 가르쳐 주셨던 이동범 선생님이 유명을 달리하신 것이다.
백병원에 차려진 빈소에서 선생님의 영정사진을 마주하니 학창시절 묵은 기억과 함께 사진 속 보다 훨씬 젊은 선생님의 옛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그 시절 선생님의 수업시간은 5분 먼저 시작해서 5분 늦게 끝나기로 유명했다. 10분 늘어난 1시간의 수학 수업은 우리학교의 불문률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불문률은 단 한번의 예외도 없이 진행됐다. 지나고 보니 그 '10분'은 우리에게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고 싶었던 선생님의 사랑과 열정이었다.


채플 시간에 간절히 기도하시던 선생님의 모습도 기억에 생생하다. 기도하는 선생님이 가르치는 학생이 어긋날 리 없다는 믿음으로 우리의 미래를 위해 기도를 멈추지 않으셨던 것 같다.


기회가 될 때마다 우리들에게 진정을 담은 기도에 대해 알려주고 싶어 하셨다. 눈물을 흘리며 우리의 장래를 위해 기도하시길 게을리 하지 않았던 선생님의 모습이 마치 어머니의 모습처럼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졸업 이후 오랫동안 뵙지 못하다가 10여년전 부터 매년 은사님들을 모시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는데 그 자리에 참석하실 때 마다 적지 않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여전한 사랑을 전하시던 모습도 오래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선생님은 졸업생 중에서 대광을 빛낸 제자들을 줄줄이 호명하시는 기억력으로 우리를 놀라게 하거나 좋은 기도문이나 설교집을 가져와 나눠주시기도 하셨다.





모르긴 몰라도 최소한 선생님께 가르침을 받았던 학생이라면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을 품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평생 교직을 천직으로 여기고 제자들에게 남다른 애정을 쏟으신 선생님이시기에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선생님은 귀감이 될 만한 처신으로 수학의 인수분해나 미적분 수업만으로는 도저히 습득할 수 없는 삶을 교육하셨다. 자기 직업을 천직으로 여기며 열과 성을 다하는 생전의 선생님을 통해 우리가 얻은 참 삶의 가치는 결코 헤아릴 수 없다. 특히 교직에 종사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선생님의 가르침은 더없이 소중한 자원이 되고 있다. 교육현장에서 스승에 대한 존경심이 실종됐다고 우려하고 있지만 존경심은 강압에 의해 형성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측면에서 선생님의 가르침은 특별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자신의 직업에 대해 진지하지 못하고 도외시 하는 요즘 세태 역시 선생님을 만났다면 분명 다른 결과를 가져왔을 거라고 생각한다.


선생님의 가르침이 더욱 빛나는 것은 자기 실천을 통해 우리들을 교육하셨기 때문이다.


‘성실성'에 대한 교육만 해도 그런 식으로 이뤄졌다.


교단에 서기 시작해서 은퇴할 때까지 단 한 번의 지각이나 결석이 없는 전설을 남기신 만큼 성실성에 있어 누구도 선생님을 능가할 수 없었을 것으로 본다. 실제로 우리가 학교에 다닐 때 폭설 때문에 대규모 지각사태가 벌어졌는데 유독 선생님 혼자만 지각을 하지 않으셔서 다들 그 이유를 궁금해 한 적이 있었다. 그 때 ’눈이 오는 날엔 특별히 3시간 먼저 출근한다’는 선생님 답변에 모두가 뒤집어졌던 기억이 난다.








인간의 삶이 한계가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그렇게 사랑을 주시던 선생님과의 이별은 아쉽기만 하다. 얼마 전 스승의 날 입원 중이시던 선생님을 찾아뵐 때만 해도 또렷한 정신으로 우리 일행을 일일이 알아보셨는데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나셨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는다.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우리 이동범 선생님의 훌륭하신 모습을 꼭 전하고 싶다는 간곡함이 이 글을 기록하게 만들었다. 교단에 계신 선생님들께도 마찬가지 심정으로 우리 선생님을 전하는 바이다.


비록 거창한 유명세를 남기신 건 아니지만 '사표'가 우리 곁에 머물다 가신 흔적을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지금 교단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또 이 시대 젊은이들에게 우리들 가슴 속에 등불처럼 살아계실 선생님의 존재를 전하고 싶었다.





혹시 이 블로그를 접하는 독자 중에 대광의 이동범 선생님을 기억하는 분이 계시다면 잠시나마 감사의 염으로 그분의 마지막을 배웅하시길 바란다. 7일 아침 백병원에서 영락교회 장으로 영면의 길을 떠나실 예정이다.


사랑하는 선생님, 안녕히 가세요.
(2010. 6. 5)


.... 홍문종 생각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