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 12일 토요일

홍문종생각-꿈을 낚는 進化

꿈을 낚는 進化


우연히 보수와 진보 진영을 대표하는 논객으로 알려진 인사들이 출연한 TV 토론을 시청했다. 하지만 토론이라기보다 싸움을 방불케 하는 공방의 연속이어서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물론 전통성을 옹호하고 사회적 안정을 추구하는 보수와 사회적 변화와 발전을 통해 목적을 달성하려는 진보와의 가치충돌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을 것이다. 적당한 경쟁이 국가 발전에 미치는 시너지 효과를 감안한다면 보혁 갈등을 비관적 관점으로만 판단할 일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때로는 이념 간 갈등이 건강한 사회적 담론을 견인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 못할 바도 없다.

다만 그 가치가 왜곡되거나 변질되는 상황을 장담할 수 없다는 게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념의 대립구도가 국가나 공동체를 위한 가치실현보다 특정세력을 대변하는 차원이라면 자칫 국민이 특정세력을 위한 소도구로 전락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삼성경제연구소 최근 작성한 ‘지표로 본 한국의 선진화 수준’ 보고서에 따르면 ‘노블리스 오블리제’나 ‘사회안전망’ 분야에서 우리나라는 OECD 30개 국가 중 30위, 즉 꼴찌를 기록했다. 보수가 자신들의 밑천이라고 할 정통성도 명분도 깡그리 외면한 채 ‘깡통계좌’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셈이다.

오만함으로 밖에는 설명되지 않는 이 정황....국민에게 아무런 감동이나 흥미도 주지 못한 보수가 그나마 자신들의 사회적 책무인 도덕적 우월성마저 방기해 버렸다.

천안함 사건만 해도 보수진영은 정부의 바람잡이를 자처했다는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정부가 내놓는 일방적인 자료로 스스로의 입맛에 맞게 가공 활용하다가 오히려 역풍을 맞기도 했으니 꼴이 말이 아니게 됐다.

보수의 시대착오적 발상이 문제다. 이대로 계속 정체된 낡은 가치에 천착하다간 조만간 국민에게 버림받고 손가락질 당하는 처지로 전락하게 될까 싶은 두려움도 솔직히 있다. 아무래도 보수진영엔 어지간해서는 진정성을 전달하지 못하는 무감각, 무감동의 DNA가 퍼져있는 것 같다.

보수(더 정확히 진보적 보수)의 일원으로서 전통적인 보수의 가치만 주장해서는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는 나는 갈수록 입지를 좁히고 있는 대한민국 보수의 미래가 걱정된다 . 진보주의적 가치를 받아들이지 않는 한 보수의 가치는 발 붙일 곳을 찾기 어렵게 될 것이다.




살아남으려면 진화하는 보수가 돼야 한다. 그것이 시대정신이다.

논란의 쟁점을 양비론으로 우왕좌왕 하는 정도가 아닌 고리타분한 보수와 철없는 진보가 확실하게 환골탈태하는 수준으로 진화돼야 한다. 진보의 존재를 묵살하거나 날마다 분화하면서 새로워지는 진보의 열정을 살피지 않고서는 세상의 흐름을 간파할 수 없다. 세상을 리드할 자격도 없다. (이 대목은 미국 보수의 영원한 영웅으로 추앙받는 레이건의 소련붕괴 전략에서 입증된 바 있다. 레이건은 재집권 이후 강경일변도로 대했던 대소련 전략을 평화공세로 바꿨다. 그리고 그의 전략은 훗날 소련 붕괴를 이끌어낸 ‘70년 공산당사의 실험을 막을 내리게 된 역사적 전환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진보를 배척하고 도원 제패를 꿈꾸는 보수는 시대착오적 발상에 불과하다.

진정 시대정신이 보수의 가치 위에 세워야겠다고 확신한다면 진보에 대한 과감한 포용을 주저해서는 안된다. 보수의 안정된 영감으로 피끓는 진보의 열정을 담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리더십을 획득할 수 있다.

혹시 변절이니 기회주의자니 하는 무책임한 매도로 그나마 보수의 원대한 꿈이 붙인 희망의 불씨를 꺼버리는 일은 삼가길 바란다. 진보나 보수. 어느 한 쪽의 개념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식의 이분법적 사고 역시 지양하도록 하자. 자칫 선명성을 앞세워 민중을 혼란의 와중으로 몰아넣는 분열의 단초가 될까 걱정된다. 마땅히 경계해야 할 상황이다.

차분히 기도하는 심정으로 이 진화의 끈을 거머쥐도록 하자...



PS : 내 이념의 정체성을 진보적 보수로 정립하기까지 여러 스승과 책의 도움이 있었지만 특별히 고인이 되신 이수인 전의원과의 대화를 통해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고백한다. 오늘은 그의 10주기 추모일이다. 직접 찾지 못하고 조화로 애도의 마음을 대신했지만 온 종일 생전의 그와 나눴던 대화들이 그리웠다. 이 혼란한 시기에 꼭 필요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더 그랬던 같다.
(2010 .6.12)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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