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30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 이제 그만

이제 그만




최진영씨의 자살 소식이 또 다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누나 최진실씨를 잃은 상실감과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이 그의 극단적 선택의 원인이었다는 소식이 안타까움을 더 해주는 것 같다. 세상에서 둘도 없이 의지하던 누나의 부재가 그의 삶에 가했을 압박을 생각하니 애잔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그렇더라도 누나를 대신해 누나가 못다 이룬 꿈이나 남겨진 어머니와 어린 조카에 대한 책임감으로 좀 더 적극적인 삶의 방향을 설정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그가 좀 더 적극적인 자세로 삶과의 정면승부를 선택했더라면 더 좋은 결과로 이어졌을거라는 생각에 아쉽기 짝이 없다.

세상을 향해 온전히 자신을 드러낼 수 없었던 환경도 그를 코너로 몰고 간 원인이 된 것 같다. 유일하게 자신의 모든 것을 보일 수 있었던 누나의 부재가 가져다 준 소통의 단절...



나 역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3번 정도 ‘죽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 경험이 있다.

지금 돌아보면 싱겁다는 생각이 없지 않지만 그 당시엔 나름 절박했던 것만은 사실이다.

첫 자살충동은 초등학교 시절에 경험한 셈이다. 어느 날 ‘신주단지’처럼 아끼던 딱지와 구슬을 하루아침에 몽땅 잃어버렸을 때였다. 동네 제일이라는 엄청난 물량만으로도 독보적인 존재감을 자랑하며 긍지를 채워주던 보물창고를 ‘털린’ 충격은 나로 하여금 더 이상 세상을 살아야 할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두 번째는 중학교 때였던 것 같다. 당시의 정확한 정황은 기억에 가물거리지만 어떤 일인가 내가 하지 않았다고 아무리 말해도 어머니께서 믿어주지 않으셨을 때 정말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세 번째는 박사학위 논문으로 내 인생이 정체되고 있다고 느끼던 시기였다. 이렇게 저렇게 꼬이다 보니 박사학위 취득 과정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고 포기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그 때, 죽는 길만이 최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이때는 앞서와 달리 조금은 심각하게 고민했던 기억이 나지만 그렇다고 (자살 충동을) 실행에 옮길 만큼 진지했던 건 아니었다. 그래도 툭하면 힘들어 죽겠다. 배고파 죽겠다. 덥고 추워 죽겠다는 푸념을 입에 달고 살고 있는 나다.



근래 들어 현대인의 우울증과 스트레스가 자살이라는 사회적 병리현상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우울증과 스트레스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주위에 안면이 있는 명망가 중에서도 정도가 심한 증세를 보이며 우려의 경지에 이른 경우도 많다. 심지어 초등학생조차 우울증과 스트레스 범주에서 자유롭지 못한 정황이고 보면 예사롭게 넘길 수 없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이 모든 것이 현대를 사는 사람들의 증후군이라고 볼 수 있는데 특히 삭막한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건물, 컴퓨터, 자동차, 로봇 등으로 대변되는 인간미 제로의 주변 환경도 한 원인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주위의 따뜻한 관심과 사랑, 우정 등으로 연대된 유대감일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존엄성을 갖게 하는 것도 필요하다.

사소한 일상처럼 보이는 그런 것들이 인간으로 하여금 삶의 의욕을 충만하게 채우게 하는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자살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는 노력은 더 없이 소중하다. 우선은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하고 우울증에 체포되지 않도록 자신을 제대로 관리할 수 있어야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시 가족을 비롯한 가까운 이웃과의 긴밀한 유대관계가 가장 중요하다. 가족이든 이웃이든 원만한 관계 유지를 위해 약간의 의무가 강요되기는 하지만 이해와 배려로 다가서고자 하는 기본자세만으로도 만병의 근원이라는 우울증 해결에 즉방의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 상비약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특별히 관심을 기울여야 할 대상이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술, 마약, 도박, 섹스 등 감각적이고 표피적인 중독성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지키는 노력이다. 모든 게 다 그렇듯 적당한 자극은 삶의 활력이 되지만 문제는 대부분 중독현상이 타당한 선에서 마무리되지 않는 현실이다. 자신은 물론 주위의 삶까지 파멸시키는 중독의 폐해는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고 특정 인물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 같은 중독성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고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해야 한다. 일테면 테니스, 조깅, 골프, 바둑 등 적당한 심신운동에 관심을 갖는 것도 한 방편이 될 수 있다.



진부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삶의 목표의식도 건전한 삶에 기능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똑같이 우울증에 시달린다고 해도 극복할 수 있을지 여부는 꿈과 희망의 존재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우리가 김연아나 박태환이 아니어도 저마다의 인생에 목표를 세울 수 있다. 그 목표가 반드시 타인과의 경쟁구도에 놓여질 필요도 없다. 스스로와의 약속을 통한 목표도 좋고 신과의 소통을 통한 약속도 좋다. 꿈과 희망이 인간의 삶에 미치는 긍정의 힘은 생각보다 강한 것 같다. (사회 보장 제도가 잘 구축된 핀란드에서 높은 자살율을 보이고 있는 현상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노력의 여지가 남아있지 않은 보장된 삶이 인간의 살고자 하는 욕망을 빼앗는 폐해로 작용하는 삶의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정황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우울증 퇴치에 있어 가장 중요한 노하우로 신앙생활을 말하고 싶다. 나 자신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스트레스는 물론이고 스스로의 존재감을 가볍게 여기지 않도록 제동을 걸어준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최진영 남매도 신앙인이었다. 인간이기 때문에 신앙만으로 쉽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도 주위에서 신앙의 힘으로 재기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더 이상의 자살 소식은 이제 그만 멈췄으면 좋겠다.

어떤 형태로든 OECD 자살률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대한민국 위치를 더욱 공고히 하는 불상사가 더 이상 일어나지 말아야할텐데 걱정이다. 개똥 밭을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을 당분간 화두 삼아 가슴에 품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살아볼 가치가 있는 세상살이 이치를 새기며 마음을 다잡아 본다.

탈 많은 3월의 마지막 날이다.

새 봄의 기운에서 상서로운 기운 한자락 건져올려 나눠야겠다.
(2010. 3.31)
...홍문종 생각


홍문종 네이버 블로그 : http://blog.naver.com/mjhong2004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