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21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광풍이 아닌 미풍이더라

광풍이 아닌 미풍이더라



이번 미국 방문은 그야말로 번갯불에 콩 궈 먹는 식으로 진행된 일정이었다.

오가는 비행기 안에서 이틀 밤, 현지에서 이틀 밤을 지내는 식이었으니 얼마나 빠듯한 일정이었는지 가히 짐작이 갈 것이다.

그렇게 정신없이 다녀오긴 했지만 곳곳에서 달라진 세계 속의 대한민국 위상을 실감할 수 있었던 기회이기도 했다.



전자여권 사용 이후 무비자로는 첫 미국 방문이었는데 LA공항에서부터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 눈에 띄는 변화는 훨씬 수월해진 통관수속 절차였다. 뭔지 모르게 우리를 대하는 공항 직원들의 태도가 상당히 우호적으로 느껴지는 것 역시 변화라면 변화였다. 출국 검색대를 지날 때도 마찬가지였다. 예전처럼 신발 벗고 혁대 푸는 과정은 같았지만 일사천리로 진행되다 보니 우선 소요되는 시간 자체가 달라졌다. 지금껏 미국을 드나들면서 이렇게 편한 분위기는 처음이었다. 그동안의 익숙함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뿌듯했다.

우리나라 항공기의 한층 업그레이드 된 내부시설도 나를 놀라게 했다(자주 비행기를 타는 관계로 항공사의 VIP 고객이다). 오래 전 처음 미국에 갈 당시만 해도 위험해서 어떻게 우리 항공사를 이용하느냐는 주위의 걱정에 마음이 흔들리던 기억이 생생하다. 시설이나 기술력이나 모든 게 미흡해서 자국민에게 조차 불신을 받으며 기피되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진 나라의 위상만큼이나 세계적인 항공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견주며 비상 중이니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었다.

나의 자부심은 미국 현지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들어가는 호텔 로비마다 삼성, 엘지, 현대자동차 등 우리 기업 로고가 지천이어서 우리의 자부심을 충족시켜줬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강력한 일본 브랜드 파워 탓인지 현지에서는 삼성이나 엘지를 일본제품으로 인식하는 분위기여서 아쉬웠다)




그러나 정작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게 아니다.

일본의 추락 전망에 너무 솔깃해서는 안된다는 경고음을 전하고 싶어 이 글을 쓰고 있다.

우연히 미국 내 일본통 교수·학생들과 함께 하게 됐는데 (개인적으로 일본을 조금 공부한 입장이어서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일본을 바라보는 미국인들의 시각을 접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들은 이번 토요타 사태에 대해 미국인들이 그동안 당해온 것에 대한 일종의 복수전 정도로 해석하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이번 토요타 사태는 일시적인 수모일 뿐, 일본의 견고한 아성에 미치는 영향력은 극히 미미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었다. 토요타 사태가 광풍이 아닌 미풍으로 그치게 되는 자체가 일본의 견고한 영향력을 대변하는 것으로 보고 있었다. 일본의 일본의 파워는 여전히 막강하기 때문에 우습게 볼 수 없다는 평가를 그들은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미국 서부의 특성 때문인지는 몰라도) 일본산 자동차는 여전히 거리를 휩쓸고 있었고 일본 관광객은 여전히 선호되고 있었다. 심지어 다 망했다는 JAL 비행기 조차 미국의 공항 터미널 중 가장 노른자위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것은 마치 일본시대 마감을 저지하고자 사력을 다하는 일본의 몸부림처럼 보였다. 세계무대에서 주도권을 놓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읽혀졌다.

일본은 여전히 우리를 버겁게 하고 있었다. 우리가 벤치마킹 상대로 삼아야 할 나라가 실상 미국이나 중국보다는 일본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일본은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우리가 연구해야 할 나라다. 중국의 부상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그 영향력 역시 간과할 수 없지만 일본이 생각보다 잘 버티고 있는 현실을 도외시해서는 안되는 이유다.



청년실업 현실도 문제지만 다음 세대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대책이 시급하다.

대한민국 미래의 경쟁력이 젊은이들에게 달려있음을 생각할 때 실업문제 못지않은 발등의 불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 정부가 젊은이들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무슨 고민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뚜렷한 대책 없이 허송세월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솔직히 불안하다.

감나무 밑에서 입만 벌리면 되는 게 아닌 것처럼 미리 준비하고 노력하는 과정 없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낙관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미래 경쟁력은 우리 기성세대부터 깊이 각성해야 할 명제다. 앞선 세대의 노력으로 우리가 지금 달라진 국가위상을 느끼고 있듯 우리 역시 양질의 국위를 후대에 물려줘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종래에는 우리가 일본을 능가하고 세계무대를 주름잡는 그 날이 오게 된다고 확신한다. 그렇지만 넘어야 할 멀고도 험한 역경의 과제는 현실적으로 그다지 녹록하지 않다.

더구나 뭔가 잘 되어가는 조짐이 보일 때가 더 위험한 게 세상사다. 한시라도 긴장을 늦추고 방심해서는 안된다. 그야말로 정글이 따로 없으니 어찌 아니겠는가.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지만 우리의 라이벌들이 고삐를 늦추지 않고 호시탐탐 우리를 노리고 있음을 주지하자. 우리의 확실한 미래를 향해 분골쇄신의 자세를 견지하자.
(2010.3.20)
....홍문종 생각


홍문종 네이버 블로그 : http://blog.naver.com/mjhong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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