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14일 일요일

홍문종생각-법정스님과 김길태

법정스님과 김길태


인간의 영역에서 神性과 獸性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요즈음 매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며 세간의 이목을 모으고 있는 법정스님, 김태길 두 사람의 대조적인 삶을 바라보며 문득 드는 생각이다.

법정스님의 입적이 종교를 초월한 상태에서 전 국민의 애도 속에 진행되고 있던 시간대에, 어린 소녀를 불귀의 혼으로 떠돌게 하고도 일말의 뉘우침조차 보이지 않는 김길태를 향한 국민의 원성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사형제도를 폐지하자는 쪽으로 기울던 민심이 사형제도 유지 여론으로 확 기울어지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뻔뻔하다 못해 혐오스럽기까지 한 그의 인면수심 때문이다. 같은 인간의 형상을 한 두 사람이 가장 높은 곳으로 경건한 추앙의 대상으로 자리매김 되는가 하면 낮고 비천한 곳에서 같은 인간이라는 동류의식에서 조차 거부 당한 채 철저히 외면되고 있는 현실이다.

극단의 자기 절제를 통해 인간이 오를 수 있는 신성의 최대영역을 보여준 삶과 잔악함으로 그리고 몰염치성으로 인간이 가진 수성의 한계가 끝간데 없는 무한의 영역이라는 사실을 입증해 준, 두 사람 다 인간의 이름을 갖고 있다. 다만 각자 다른 인생의 설정을 통해 극명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는 점이 다를 뿐이다.



근본원인은 뭔가?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는 것처럼 인간의 삶 역시 파종되는 씨앗에 따라 결정되는 거라면 오히려 간단히 풀릴 문제다. 그러나 근본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태어난 이후 형성된 인성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한다면 그저 남의 일로만 치부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좀 더 근원적인 점에서부터 책임의식을 가지고 분석해 볼 과제로 접할 일이다.

알려진 것처럼 김길태는 길거리에 버려진 삶으로 시작, 양부모 밑에서 자라면서 어린 시절부터 소년원을 제 집 드나들 듯 한 전력을 가진 서른 셋 나이의 청년이다. 법정스님은 한 핏줄끼리 총부리를 겨눈 한국전쟁을 경험하면서 인간 존재에 대한 물음 앞에서 고민하다가 대학 재학 중 입산 출가를 실행, 평생을 정진수행하는 삶으로 일관하신 고승이다.

범죄와 수행, 평범한 일상에 그칠 수도 있었을 인생의 서로 다른 과정이 두 사람의 인생을 끔찍한 범죄자와 고매한 고승의 삶으로 가르는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평범한 삶을 보내던 김길태가 뒤틀린 인생을 살기 것도 ‘버려진’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중학생 때부터라고 했다. 부모로부터 버려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게 된 그 역시 어쩌면 가혹한 운명의 희생양일지도 모른다. 김길태 사건에서 자녀의 양육환경이 얼마나 중요한 지 깨닫게 해 주는 사례다. 설사 부모가 자식을 유기하지 않았더라도 버린 것과 다름없는, 방치된 양육환경이 얼마나 끔찍한 범죄 양산의 동기가 될 수 있는지 웅변해 주는 대목이다.

유명무실한 우리의 교도행정도 근원적인 문제제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생각이다.

사람을 교화하는 것이 아니라 범죄를 심화시킨다는 비난을 감수할 수 밖에 없는 정황을 다시한번 확인하게 해준다. 특히 소년원은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의 청소년 범죄에 개과천선의 기회를 제공하기보다 더 교묘한 범죄의 수렁에 빠뜨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96년 폭행혐의로 발을 딛게 된 소년심사분류원을 시작으로 33년 인생 중 11년을 교도소에서 보낸 김길태의 삶을 보면 교도행정의 덕에 힘입어 교화된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다. 오히려 점점 중죄인으로 교도소를 들락거리는 등 더 큰 문제의 심연으로 내몰렸을 뿐이다. 이번 기회에 청소년 범죄 대책에 대해서도 새로운 고민과 대책을 마련하는 움직임이 있어야 하는 이유다.



뒤늦게 범행을 시인하기 시작했지만 사악한 태도로 일관하던 그를 보면 어이가 없다. 타락한 인간이 짐승보다 못하다는 사실을 전적으로 입증해주고 있다. 짐승은 단지 생존본능을 위한 순간 상대에 위해를 가하는 반면 인간은 그야말로 예측불허의 광범위한 영역을 통해 해악을 행하니 그 죄의 깊이를 헤아릴 도리가 없다.

이에 대한 해법은 교육밖에 없는 것 같다. 교육의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만큼 중요한 영역임에 틀림없다. 이번 사건으로 제대로 된 인성교육이 한 사람의 삶의 가치를 얼마나 천양지차로 바꾸어 놓을 수 있는 건지 실감하는 계기가 됐으리라 생각한다.

김길태 같은 불가사의한 인간은 우리의 교육 기준이 명예나 권력, 재화 등 너무 세속적인 대상에만 포커스가 맞춰지면서 인간 양성에 실패한 결과물이 아닐까 싶다. 이런 교육이 수정되지 않는 한 앞으로도 제2, 제3의 김길태가 안나온다고 보장할 수 없다.



법정스님의 '마무리'가 세인들에게 아쉬움을 남기는 것은 진정으로 인간답게 살다간 생전의 흔적 때문일 것이다. 끊임없는 자기 정진을 통해 제대로 살다가는 인생의 전형을 보여주신 이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 것이다.

일선 교육 현장에 있어서도 면벽수행까지는 어렵더라도 인간으로서 기본적으로 추구해야 할 삶의 가치만큼은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생의 근본적인 사유를 화두로 삼는 교육의 실천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포화상태가 될 만큼 종교도 넘치고 성직자도 넘치는데 왜 법정스님이나 김수환 추기경 같은 삶을 사는 이들을 많이 만날 수 없는 걸까...그런 투정이 저절로 나오는 한심한 세태다. (이 참에 종교계의 통렬한 자기 성찰과 반성을 촉구하는 바이다).



어차피 잠시 들렸다 가는 세상인데 이왕이면 인간다운 삶의 한계를 넘는 일은 없어야겠다. 최소한 개, 돼지 보다 못한 삶을 살아서야 되겠는가.

지금부터라도 주위의 인연에 대해 좀 더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야겠다고 새삼 다짐을 하게 된다. 모두가 귀하고 귀한 존재인 것을.

법정스님의 향기가 마감된 오늘, 인생의 화두 하나를 새롭게 건져 올린다.
(2010.3.14)
....홍문종 생각



홍문종 네이버 블로그 : http://blog.naver.com/mjhong2004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