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8일 월요일

홍문종 생각-동혁이 형

동혁이 형


TV 시청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내 관심사는 주로 국내 뉴스나 CNN, BBC, NHK, CCTV 등 외신에 쏠려 있는 편이다. 그러나 코미디 프로인데도 유독 챙겨 보게 되는 ‘개그콘서트’는 예외다. 그 중 ‘봉숭아 학당’ 코너의 ‘동혁이 형(개그맨 장동혁 분)’ 캐릭터에 상당한 재미를 느끼고 있다. 실제로 '동혁이 형'은 매주 정치 사회 분야의 핫 이슈에 대해 쓴 소리를 아끼지 않는 대사로 ‘촌철살인의 풍자’라는 평가 속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오늘 이 프로그램이 세인의 이목을 모았다. 방송개혁시민연대(이하 방개련)에서 ‘포퓰리즘을 기반으로 한 선동적 개그“라며 문제를 삼고 나서면서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됐기 때문이다. 파격적 직설화법을 거침없이 날리고 있는 극 중 ‘동혁이 형’ 대사가 타겟이 됐다. 방개련의 반발이 일면 수긍이 가지 않는 건 아니다.



그러나 10여년 미국 생활을 하면서 이보다 훨씬 노골적인 풍자 코미디를 많이 봐 왔던 터라 방개련의 우려가 도를 넘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미국의 경우 닉슨이나 클린턴, 부시 등 역대 대통령은 물론 현 오바마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정치 풍자의 소재에서 자유롭지 못한 현실이다. 게다가 단순한 해학이나 풍자로 넘기기에는 민망하거나 저질스럽기까지 해서 상당히 곤혹스러운 내용 일색이었지만 그런 프로들이 문제시 되는 경우는 별로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도 The Daily Show나 Saturday Night Live 같은 프로는 현실 정치나 사회현상에 대한 신랄한 풍자와 블랙 코미디로 미국민들의 사랑 속에 건재하게 연륜을 쌓고 있는 장수 프로그램이다.



어쨌든 방개련의 문제제기에 힘입어 ‘동혁이 형’은 공전의 히트를 치게 됐다. 방개련 관련 보도가 나가자 마자 ‘동혁이 형’ 검색어가 대번에 인터넷 검색 순위 1,2위를 달리게 됐으니 하는 말이다. 결과적으로 방개혁이 당초 의도한 바와는 다르게 ‘동혁이 형’의 주가를 올려준 셈이 됐다.

‘동혁이 형’ 사건에서 얼마 전 경험했던 김제동 파동의 그림자를 보게 된다. 무엇인가가 문제시 되어 프로그램을 하차하게 된 김제동의 인기가 오히려 급상승하게 되면서 보궐선거에 직접적 역풍으로 작용(이는 여당 내부에서도 인정했던 바다)했던 상황을 떠올리게 되는 건 기우일까?

민심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결코 승산이 없는 가장 기초적인 상황이 배제되는 건 전략이 아니다. 오히려 스스로의 발목을 잡는 자충수가 될 확률이 크다.



대학 총장을 하면서 학생들의 요구를 듣기 위해 만나야 하는 일이 많다. 오늘도 만났다. 그들의 요구가 늘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다. 때에 따라 마음에 안 드는 요구사항도 대면하게 된다. 그럴 때면 될수 있는 한 자율에 맡겨두는 편이 가장 좋은 해법이라고 생각한다. 섣불리 설득논리로 접근하다간 극심한 대립 양상을 초래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학생들의 관심이 옮겨가게 돼 있고 생각보다 손 쉽게 실마리를 풀어냈던 경험이 있다.


힘 있는 쪽은 이기려 하기보다 져주는 모습으로 접근하는 게 지혜로운 처신이다. 더구나 상대가 이미 이쪽이 가진 힘의 무게를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상황이라면 적당히 힘을 빼고 주는 타협점을 찾다보면 길이 열리게 돼 있다. 힘 있는 쪽이 힘을 과시하는 방식은 해결점을 찾기 어렵게 하고 작은 일도 크게 확대시키는 잘못된 선택이다. 예전에 지방선거 공천심사위원장으로 활동할 때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공천후보경쟁이 첨예한 곳일수록 거의 방치 수준으로 버려두면 처음에는 정신없는 분쟁국면으로 치닫더라도 종국엔 스스로들 마음을 비우고 중립지대로 나오는 모습을 몇 차례 목도한 바도 있다.



갈수록 극심한 국론 분열이 심신을 괴롭히는 요즈음이다.

힘 가진 계층의 고민을 찾아보기 힘든 것도 국론분열의 한 요인으로 작용하는 건 아닐까 싶다.

힘의 과시는 하수의 전략이다. 힘이 있어도 이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상대방의 공포는 훨씬 극대화 된다고 한다. 힘의 무기는 과시가 아니라 관용과 포용이라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자. 인내를 가지고 기다리다보면 최소한 상대로 하여금 나와 다른 생각을 알고자 하는 여유로움을 안겨줄 수 있게 될 것이다. 힘센 바람은 나그네의 외투를 꽁꽁 여미게 하고 힘없는 햇빛은 나그네의 외투를 벗길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힘의 남용은 반드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게 돼 있다.

힘의 미학을 다시한번 새겨 볼 일이다.
(2010. 3.8)
....홍문종 생각



홍문종 네이버 블로그 : http://blog.naver.com/mjhong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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