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30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젊게 살자

젊게 살자
일본 원전 사고는 급기야 플루토늄까지 유출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시시각각 수렁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상황이 예사롭지 않다.
무엇보다 이 무서운 현실이 일본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지구촌 전체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는 게 문제다.
전 세계가 방사능 피폭 걱정으로 초긴장 모드다.   가공할 만한 우려가 현실이 된 것이다.
 일본에서 유출된 핵 방사능이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과 러시아, 미국을 비롯한  유럽 전역에서 속속 감지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야말로  바람이 닿는 곳이면  그 어느 곳도  안심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래도 지진이나 쓰나미 걱정만 할 때가 차라리 행복했다.
천재지변으로 망가진 상황을 복구만하면   되는  단순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전사고로 이어지면서는 더 이상 의 낙관이 허락되지 않는 정황이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일촉즉발의 위기가  피를 말리고 있다.
이렇게까지 사태를 키운 건 도쿄전력과 일본 정부의  무능하고 이기적인 대응 때문이라는 힐난이 쏟아지고 있다.  
무리는 아니다.  원전사고 초기, 미국이나 프랑스 등의 사고수습을 위한 기술 지원 제안을 거부한 도쿄전력의 안일한 대응이  만든 인재라는 비난에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생각이다. 
도쿄전력으로선 원자로 폐기나 거액의 비용 지출을 염두에 둔 망설임이었겠지만  그러는 사이 일본국민은 물론 전세계인의 안위까지  핵 불안의 인질이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  시대착오적 패착을 생각한다면  엄청난 악수를 둔 셈이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게 만들어 버렸으니 오죽할까 싶다. 
실제로 후쿠시마 원전 위기가 2년간 지속될 경우 도쿄전력의 배상액은 11조엔(1320억달러)으로 추정되고 있다. 최악의 경우 감자와 대출금 출자전환에도 불구하고 배상 비용을 감당하지 못할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고 보면  그들의  우매한 얍삽함이 한심하다. (독도 문제로 우리의 속을 긁고 있는  밉상스러움이라니)   

항명이니 아니니  화제를 낳고 있는  우리의 예비역 장성의 집단 반발에서도  낡은 사고의 전형적  퇴행현상을 보게 된다.  
합참의장의 권한을 크게 강화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MB정부의 군 개혁 의지에 일부 영관급 현역과 성우회 등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고 한다.   합참의장 1인에게 군령권(전투지휘권)에 각 군 총장에 대한 군정권(일반 지휘권)까지 몰아주는 식의 지휘체계 개편은 문민통제 원칙에 어긋나는 잘못된 방향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는 것이다.
나치와 일제, 러시아ㆍ중국ㆍ북한의 방식으로 1인에게 무력이 집중되는 ‘통합군제’로   정치가 군의 눈치를 보게 되는 폐단을 야기한다는 그들의 우려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식의  대응은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낡은 사고로  치부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고작해야   기득권에 연연해 하는 집단 이기주의로  비춰질  가능성 마저 있다.   그 무엇도 국가 이익보다 앞서는  가치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대통령의 통치행위 전부가 바람직하고 긍정적일 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에 대한 절대복종은 (군 조직에서) 고려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이다.  더구나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가 되어있는 우리의 처지다. 
성우회 등의 이번 처사가 국가의 자존심을 최우선시해야 할 국가와 군의 사명을 저버린   이기심의 발로는 아니었는지 돌아봐야 하는 이유다. 
 
위기 앞에서 무기력하게 무너지는 일본을 바라보며  이것이 일본의 실체일까 생각한다. 
운기를 다한 노쇠한 노인의 마지막처럼 스산한 그 모습에서 우리의 현실은 어떤지 뜨끔한  자극을 받는다.   
세계 최고의 부를 자랑하던  당당함은 간곳 없고   위기 앞에서 속수무책  찌그러들고 있던  그 무기력은 가히 충격이었다.    3위, 4위, 5위... 갈수록  전락해가는  일본의 미래를 예측하게 되는 건   이번 사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무능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낡은 사고다.
시대상황에 맞는 열정과 관심으로 '젊음'을  지키고  인생을 주도해야 하는데  일본은 그렇지 못했다. 기력을 잃은 노쇠함만 있을 뿐  미래의 가능성을  설계할 수 있고   진취적 사고로 뚫고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군 개혁에 어른스럽지 못한 대응으로 구설에 오른   우리의  예비역 장성들의 모습을  통해서도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국가 뿐 아니라 개인의 삶에서도 낡은 사고는 과감히 퇴출시켜야 할 불청객이다.
누구나 미래를 잘 지켜내고 거듭나는 삶을 잘 펼치고 싶은 욕구가 있다.   주위에서도 젊은이 같은 노인과  노인 같은 젊은이를 흔히  만나게 된다.  그들의 확연히 구분된  삶의 형태가  우리에게 충분한 자극거리가 되는 건 물론이다.  
부러워만 할 게 아니라 우리도 지금부터  젊은  미래를  함께 향유하도록 하자. 
젊은 오빠, 젊은 언니의 삶을 살도록 하자.  
 어렵지도 않다.  '젊은 사고'를 하면 되니까.
                                                                 (2011.3. 30)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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