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3일 목요일

홍문종 생각 - 용틀임 시작이다

용틀임 시작이다

오늘 하버드대 케네디 스쿨(행정대학원) 동문 모임에서 감투를 썼다.
이우철 동문과 최홍건 동문 등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신임회장에 피택된 것이다.
사실 이 두 분은 선임 회장인데다 하바드 재학 시 막역한 관계가 작용돼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이뤄진 셈이라고 할 수 있다. (하바드 시절 20대인 나와 30대인 이우철 회장님 그리고 최홍건 회장님은 40대였지만 세대차이 없이 매일 붙어 지내다시피 한 사이다)
회장직을 수락하는 순간 두 가지 상념이 머릿 속을 스쳐갔다.
‘이제 나도 (동문 회장을 맡을 정도로) 나이를 먹었구나’하는 현실인식과 ‘일복이 터지겠군’ 하는 책임의식의 발로가 그것이었는데 앞으로 회장 임무를 제대로 수행해내겠다는 각오를 다지게 했다.
개인적으로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치열한 경쟁 구도를 거친 건 아니지만 상당한 의미를 부여할 정도는 되는 결과라고 생각됐기 때문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하버드 교정을 떠난 지 어언 30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동문 회장으로 추대될 정도가 됐다는 건 최소한 그동안의 내 삶이 함부로 살지 않았다는 증표가 아닐까 싶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 삶에 영향을 미친 몇 건의 이벤트가 있었다.
하버드와의 인연도 그 중 하나다.
1982년, 찰스강을 건너 하버드 야드로 들어설 때의 그 벅찬 감동은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생생한 기억이다.
물론 그 때 말고도 크고 작은 울림으로 내 삶의 과정을 충만하게 채워주던 감동의 순간은 많았다.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을 때라던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을 때, 그리고 한나라당 경기도당 위원장이 됐을 때도, 그리고 어릴 때로 돌아가면 선거에서 이겨 의정부시 대학생회 회장(40여년 전에는 그런 타이틀도 있었다)이 됐을 때의 감격 등이 그런 순간이다. (그런데 내 인생을 돌아보면 결과물보다 성취하기까지의 드라마틱한 과정이 감동을 극대화시키는 특이한 경우가 적지 않은데 기회가 되면 따로 피력해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버드와 대면하던 그 첫 순간은 유난히 강렬한 삶의 기억이 되어 저장돼 있다. 밤을 새워 공부하던 기억조차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는 그 시절, 그 때처럼 열심히 공부에 매진했던 적은 없는 것 같다. 청춘의 정열과 함께 했던 시기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 고건 전총리 등 많은 인재들과 동문수학하며 귀한 인연을 맺었고 DJ, YS를 비롯해서 케네디, 두카키스, 아키노 등 수많은 국내외 저명인사들을 접하며 꿈을 키우던 청년 시절의 내가 있던 그곳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 같다.

지금부터 앞으로 내 삶의 15년을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승패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고 또 그것이 생의 마지막 날 내가 받아들 성적표가 되지 않을까 싶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날, 지금부터 내 인생의 프라임 타임이 시작되고 있다는 이 느낌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용틀임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나의 열정과 진정성을 무기 삼아 이 용틀임이 확실한 방점을 찍는 모멘텀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문득 하버드에서 꿈을 키우던 그 시절의 ‘홍문종’으로 되돌려지기라도 한 것처럼 가슴이 뛴다.

PS:뛰는 가슴을 안고 도봉산에 올라 내 남은 생애와 그리고 나와 연관된 모든 인연들을 위해 기도했다.
하느님, 도와 주세요 라고.


(2011. 3. 3)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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