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15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 21세기 소프트웨어

21세기 소프트웨어

우리에게 있어 늘 가깝고도 먼 나라였던 일본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
지진, 쓰나미 그리고 원전폭발로 무장한 자연의 역습에 쑥대밭이 되고 만 것이다.
우리가 도대체 무엇을 믿고 천년만년 살 것처럼 천방지축이었던 건지 왜소한 인간의 실체를 드러냈다고나 할까, 좌절감이 하늘을 덮는 부끄러움으로 밀려드는 순간이었다.
자연의 재앙 앞에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는 인간의 나약한 숙명을 절감한 경험이기도 했다.

그러나 극한상황 속에서도 허물을 벗고 비상하는 피조물의 위대한 저력을 목도하면서 좌절감이 조금은 희석되는 기분이었다.
위기상황 속에서 평상심을 잃지 않은 일본국민의 차분한 질서의식 덕분이었다.
놀라우리만치 차분하게 대응하는 일본 국민들이 모습이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아비규환 속에서도 남에게 부담이 될까봐 자기감정을 추스르며 타인에 대한 배려와 절제를 잃지 않는 위대한 정신력, 혼란의 와중에서 약탈이나 방화사건 한번 없이 일상의 질서를 유지하던 일본국민에게 지구촌 사람들이 마음을 뺏기는 건 너무나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이다.
문득 비슷한 정황이 일제 강점기 당시 전향했던 친일파들의 고백에도 묻어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가 독립될 줄 몰랐고 또 일본이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나라로 믿어졌다는 토로였는데 그들의 변명이 꼭 변명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새로운 느낌에 사로잡혔다.

일본 대사를 지냈던 지인과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도 일본 국민 특유의 국민성을 화제로 삼은 적이 있다.
다른 이들보다는 일본을 더 깊숙이 들여다 본 경험이 있는 지인의 일성은 ‘일본을 절대 얕잡아 보지 말라’였다. 전자산업과 자동차 산업 부분에서 일본을 추월했다고 자만하다간 큰 코 다치게 될 거라는 경고였다. 일본을 이기려면 아직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면서 일본의 인성교육을 강조했다. 전후 잿더미가 된 일본이 세계경제 대국으로 올라선 배경에는 이른바 기본적인 인성교육의 역할이 컸다는 얘기도 덧붙였는데 충분히 공감이 갔다. 유치원부터 타인에 대한 배려와 자기 절제는 물론 철저한 질서의식을 인식시키는 교육이 오늘의 일본국민성을 정착시키는 일등공신이라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었다.
다수의 일본인 관광객이 목숨을 잃었던 부산 화재사건 당시에도 그들은 특유의 침착성을 보여준 바 있다. 부산 현장을 찾아온 유가족들이 관계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무릎을 꿇은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으며 ‘(고인에)신경 써달라’는 취지의 발언 외에는 별다른 요구 없이 면담을 끝냈던 것 같다.
미국의 LA폭동 당시의 혼란을 떠올리면 저절로 극명하게 대비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일본의 현 상황에 비하면 조족지혈에 불과했는데도 무법천지라도 되는 양 약탈과 방화가 LA거리를 공포에 몰아넣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결국은 국격의 문제라는 데 생각이 미친다.
그런 측면에서 일본 국민의 선진의식은 칭송받을 만 하다.
하지만 우리의 국가적 자부심 역시 일본의 저력 못지않다는 생각이다.
정신대 피해자였던 할머니까지 나서서 도움의 손길을 자처하는 대한민국의 일본 돕기는 내게도 가슴 뭉클한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일본의 불행에 구원에도 불구하고 발 빠른 인류애로 대처한 대한민국 국민이 있는 한 21세기 대한민국의 국격은 그 기치를 높이 올릴 수 있을 것이다.
기업도 학교도 국가도 결국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 웨어의 우수성이 더 중요해진 시대를 살고 있다.
국격의 중요성도 그만큼 더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더불어 산다는 생각으로 타인에 대한 배려를 일상화 하도록 해야겠다.
그것이 선진국민에 요구되는 소프트웨어 아닐까 싶다.


(2011 . 3. 15)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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