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2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同志

同志

이석제 전 감사원장의 부음을 신문 부고란을 통해 접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5.16 거사에 나서도록 설득한 인물로 알려진 그는 개인적인 친분보다는 가친께서 동향인이라는 이유로 관심을 갖는 분이어서 알고 있는 정도다.
별세 소식이 전해지자 갑자기 그의 삶이 조명되고 세간의 이목이 쏠리는 분위기다.
처음에는 초야에 묻혀 조용한 노후를 보내던 고인의 생전을 감안하면 유별나다싶을 정도여서 의아했다.
그러나 곧 의문이 풀렸다.
권력의 핵심 실세였음에도 평생을 흐트러짐 없이 살다간 그의 족적을 살피다보니 충분히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형적인 부와 화려함은 없었어도 향기 충만한 그의 삶은 충분히 성공적이었다.

그에게 군인으로서는 물론, 고위 공직자로서도 비범한 삶을 실천한 ‘참 인간’이라는 평가가 따라 붙고 있었는데 그를 기억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하며 수긍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죽기를 각오하고 거사에 나설 혁명당시의 초심을 잃지 않고 박전대통령에게 직언을 서슴지 않는 가하면 청빈하고 유능한 공직자의 표본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그의 삶이 조명받는 이유인 듯했다.
실제로 그가 혁명 직후 총독부 시절 법과 군정 당시 영어로 만들어진 법 등 수천 건에 달하는 법령정비로 사법 사상 가장 중요한 개혁을 결행하거나 공무원직제, 연금법, 공무원공개채용, 승진시험 등을 도입하여 나라의 기강을 바로 세운 공적은 두고두고 회자될 가치가 충분한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었다.

평생 자기 절제의 기조를 잃지 않았던 그의 삶은 부정부패와 무능에 찌든 국가와 민족을 구하기 위해서 혁명을 해야 한다던 자기주장의 당위성을 뒷받침하고자 했던 그의 의지라는 생각이다.
이런 그가 있었기에 박정희 전 대통령과 5.16 혁명이 많은 공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을 부흥시키고 기초를 놓았다는 당위성으로 평가받을 수 있게 된 건 아닐까 싶었다.
그러고 보면 인생에서 사람과의 인연이 얼마나 중요한 건지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
역사의 현장에도 뜻을 이루고자 했던 모든 시도에는 죽음을 불사하는 최선의 열정과 마음을 함께 한 조력자들의 결집된 힘이 존재했었음을 알 수 있다.
박 전대통령이 5.16 혁명을 성공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도 고인을 비롯한 동지들의 뒷받침이 있었다. 스탈린도 소련 공산당의 탁월한 이론가이자 저술가인 니콜라이 이바노비치 부하린의 조력이 없었다면 트로츠키와의 권력 투쟁에서 승기를 잡지 못했을 것이다. 체 게바라가 아니었다면 쿠바의 공산정권 수립은 어려웠을 것이고 오늘 날 북한의 김정일과 함께 지구상 가장 폐쇄된 국가의 독재자로 유명한 카스트로 역시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성계 역시 삼봉 정도전의 천재성이 도왔기 때문에 조선 건국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정도전과의 콤비 플레이가 없었다면 그의 꿈은 한낱 물거품에 그치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세조가 정권 찬탈에 나서는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도 한명회를 비롯한 열렬 지지자의 성원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무슨 일이든지 목숨 바쳐 뜻을 같이 하겠다는 동지의 존재가 가장 필요하고 또 중요한 것 같다. 목숨을 바칠만한 명분과 이유를 갖추고 있어야 하는 건 물론이다.

21세기가 되면서 목숨 바쳐 추구해야 할 장엄한 국가적 아젠다의 명분이 희미해지면서 사람들이 승부근성을 잃고 점점 나약해지는 분위기다.
그러나 아직도 민족의 과제인 통일과업이 남아있는 우리로서는 경계해야 할 모습이기도 하다.
통일을 이루기 위해 어떤 형태로든 극복해야 할 북한의 존재를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되겠다.
고인이 신념을 위해 혁명을 결행하던 그때처럼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릴 각오로 분연히 떨치고 나설 수 있는 진정한 용기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다.
그런 용기와 신념을 가진 지도자의 출몰이 너무나 간절해지는 이 즈음, 진정한 지도자의 사표를 남기고 떠난 고인의 명복을 빈다.


(2011. 3. 2)
....홍문종 생각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