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27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전환기엔

전환기엔

변하고 있다. 지금까지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해왔던 사회적 가치관이 끊임없이 진일보하는 모습이다. 변화의 방향이 바람직한 지 여부와 무관하게 눈에 보이는 변화가 빠르게 이어지고 있다. 특히 흥미로운 건 젊은이들의 사랑방식과 결혼관의 변화다. 수명을 다한 기존의 가치관 대신 새로운 유형의 의식구조가 빠르게 진입하고 있는 형국이다. 새로운 것이 반드시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필연적이라는 생각이다.

결혼제도는 시대적 상황에 따라 바뀌어 왔고 지금의 일부일처제 도입도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남성 중심 사고의 산물이지만 옛날에는 일부다처는 물론 축첩까지도 조건없이 허용되는 범주였다. 기득권 계층의 남성들의 특별할 것 없는 권리이기도 했다. 심지어 삼국시대에는 중혼제도가 성행했던 기록도 남아있다. 일부일처제도가 정착된 지금은 남자와 여자가 만나 가정을 이루게 되면 어떤 상황에서건 결혼의 틀을 깨는 것을 금기시하는 분위기다. 그 틀 안에서의 온갖 기형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는 성역 개념의 결혼관이 상식이고 관행으로 우리의 의식구조를 지배해 왔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과 권력이 결혼의 공적기능을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상황이 완전히 차단된 건 아니다. 3천 궁녀를 거느렸던 의자왕이나 1천명의 처첩을 둔 솔로몬 왕의 호사(?)가 현재 진행형으로 존재하고 있는 현실이다.
모순이지만 현실이 그렇다.

결혼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건 아무래도 성을 대하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직업상 교육현장에서 젊은이들의 성 풍속을 지켜볼 기회가 많은데 지나치게 과감하고 개방적인 그들의 결혼관이나 연애관에 놀라는 일이 많다. 성은 그 은밀성 때문에 지금까지 남들과의 공유가 불허되는 ‘절대적 사적영역’으로 다뤄진 측면이 있다. 고루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남녀칠세 부동석’이라는 말로 남녀 간의 접촉을 터부시하던 관행도 있다. 실제로 남녀가 한 방에 들었다면 반드시 결혼으로 책임을 져야하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던 게 불과 얼마 전 일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요즘 젊은이들은 남녀 구분 없이 적극적인 구애의 주체가 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이성교제를 시작하고 친밀해지면 망설임 없이 곧바로 동거에 들어가는 풍경도 낯설지 않다. 만남에서 동거에 이르기까지 그다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스피드를 선호하는 젊은이들답다.
관계의 유한성을 대전제로 하는 출발부터 얽매임이 없다. 물론 현재의 관계가 영원으로 이어지길 바라기야 하겠지만 서로에게 다른 상대가 나타나면 언제든 헤어질 수 있다는 부담없는 전제가 이들의 성적 관념을 더 자유분망하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다.

문제는 이러한 관행들이 결혼에 대한 절박함을 희석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헤어지면 또 다른 이성을 파트너로 만드는 과정이 어렵지 않게 반복되다보니 결혼이 불필요한 에너지를 유발하는 불편한 존재로 인식되는 것 같다. 뿐만 아니라 결혼으로 파생되는 가족관계에 부과되는 책임감들도 부담으로 받아들여지는 형국이다. 둘 사이에 사랑의 결실로 태어난 자식조차도 인생을 가볍게 살고 싶은 젊은이들을 난감하게 만드는 장애 요인이 된다.
사랑하는 연인과의 교제는 좋지만 그 주변부까지 챙겨야 하는 상황은 반갑지 않다는 식이다. 그런 의식이야말로 젊은이들의 결혼 기피를 부축이면서 결혼의 결속력을 떨어뜨리는 주범이 아닐까 싶다. 50% 대를 육박하는 이혼율로 OECD 1위가 된 우리의 현실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이대로라면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결혼제도 자체가 유명무실해진다는 중론이 지배적인데 결코 무리한 추론은 아닐 것이다.
세대에 따라 사고의 유형이 달라짐에 따라 이혼에 대한 개념도 관점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진공관 세대가 이혼을 사회적 낙오와 지탄의 대상으로 지목한 반면, 아날로그 세대는 이유가 타당하면 언제든 가능하다는 식으로 진화했고 급기야 디지털 세대인 지금은 이혼을 결혼의 필수 상황으로까지 받아들이는 추세다.
당분간은 이 트랜드가 지속될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성 스캔들로 우리 사회의 뉴스메이커가 된 ‘신정아나 등신명’이 울리는 전주곡은 새로운 가족형태로 탈바꿈하면서 겪을 수 밖에 없는 진통이 아닐까 싶다.

갈수록 결혼의 의미가 축소될 공산이 크다.
결혼으로 만들어진 친가나 처가 등의 가족 관계도 선택적이고 제한적인 관계로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둘 사이를 방해하거나 생각이 다른 가족은 갈수록 소외되거나 타인의 존재로 전락되어가는 조짐이다.
자식문제조차도 종족번식 개념이나 사랑의 징표가 아닌 반지를 주고받는 개념 정도로 일반화되는 추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설적인 가정을 꾸리거나 2세 계획, 가족 관계 형성에 대한 고민은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더할 수 없이 귀한 인간의 사회적 가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한들 이전의 결혼형태와 비교하며 부모나 가족에 대한 부양책임을 추궁하거나 자식을 낳아야 한다는 채근, 그리고 검은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의 부부해로를 강요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다. 오히려 그런 고정관념부터 깨버려야 한다는 것이 평소 나의 지론이다.

섹스에 대한 관념이 달라지고 있는 현상을 간과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남녀 간의 성적 결합이 단순히 즐기기 위한 쾌락 용도로만 존재하게 되거나 성문란 현상을 부채질 하게 될까 걱정이다. 대한민국 미래가 달려있는 일이기에 더욱 그렇다. 섹스는 스포츠 처럼 단순 쾌락을 추구하는 용처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책임과 사랑 그리고 진실을 수반한 인간의 감정이 함께 했을 때 비로소 본연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음을 다음세대에 가르쳐야 할 책무가 우리에게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

모든 게 변하고 있는 21세기다.
이런 전환기일수록 기성세대의 중심을 잡기 위한 노력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변화도 좋지만 바람직한 방향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하는 손길 만은 끊임없이 이어져야 한다.

(2011. 3. 27 )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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