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31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 부러진 화살이 노린 과녁은?

부러진 화살이 노린 과녁은?


판사 석궁 테러사건 소재 영화 `부러진 화살'의 뜻밖의 흥행으로 사법부의 가슴앓이가 깊어지고 있다.
개봉 2주 만에 200만 관객 돌파로 화제가 되면서 사실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사법부의 불편부당을 고발하는 창구로 자리매김 되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그동안 억눌려 있던 사법부에 대한 불만들이 봇물을 이루며, 국민저항이 영화의 흥행을 돕는 격이다.
급기야 양승태 대법원장까지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하고 나서기에 이르렀다. 특히 ‘사람들이 왜 법원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하는지 고민해야 한다’며 자성을 촉구한 대목은 생각의 여지가 많다.

그렇다.
국민적 저항을 자초한 건 수없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건재한 사법 병폐가 화근이었다. 전관예우, 고무줄 양형기준, 유전무죄 무전유죄 등 후안무치한 사법 관행이 문제였다. 그 부끄러운 자화상이 “이게 재판이냐, 개판이지“라는 영화 속 대사를 유행어로 만들었다. 오랜만에 입을 연 변양균 씨도 “해 봤자 아무 의미가 없다. 부러진 화살과 똑같다”는 일성으로 법원 불신을 드러냈는데 그 어느 때보다 공감을 얻는 분위기다.

예사롭지 않은 현상이 2012년 대한민국 신년 벽두를 달구고 있다.
정치를 하면서 별난 상대 덕분에 법원의 처신을 경험할 기회가 적지 않았다.
한 번의 선거가 끝나고 나면, 나처럼 힘겹게 정치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유난히 고소고발에 시달린 기억이 많다. 그러다 보니 선거가 끝나면 '이번에는 또 무슨 트집으로 사람을 잡으려 들까' 하는 고민이 덤으로 따라오기 일쑤였다.
개인적 경험에 의하면 우리 사회는 사법 정의가 제자리를 잡으려면 아직 멀었다. 판사가 됐건 검사가 됐건 ‘절대적인 힘’ 앞에서 가장 취약해져 버리는 아이러니한 집단이라는 판단이다. 사법 불신을 직접적으로 입증할 증거는 없지만 정황 증거가 될 만한 자료는 무수히 갖다 댈 수 있다. 또 실태를 전하기로 하자면 책 한권 쓸 분량은 이미 준비된 상태다. 무엇보다 기득권이 없다고 볼 수 없는 내가 불공정을 느낄 정도라면 이땅의 99%, 특히 소외계층이 갖게 될 박탈감의 크기가 어느 정도일지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굳이 먼 과거를 찾지 않아도 엉터리 검찰 수사나 법원 판결로 사법부의 권위를 실추시키는 해악을 목도하기가 결코 어렵지 않을 것이다. 최근만 해도 검찰의 친구나 동료 봐주기 행태로 눈총을 산 이른 바 ‘벤츠 여검사 사건’이 있다. 또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물의를 빚은 ‘서울대 성폭행 사건’은 석연찮은 증거자료로 2심에서 무죄(1심에서는 징역 3년6월형)를 이끌어 낸 , 전관예우의 위력을 발휘한 호화 변호인 진영이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사법부의 모든 처신이 문제가 된다는 건 아니다.
법원 조정위원으로서 직접적으로 활동했던 경험이나 평소 모임자리에서 만난 판, 검사 친구들 얘기를 귀동냥 하다보면 사법부가 얼마나 어렵고 고독한 직업인지 모르지 않는다. 그네들 중 성실하고 진지하게 자신의 본분을 지키며 최선을 다하는 법조인들이 더 많이 존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부러진 화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작금의 사회적 논쟁이 그들을 억울하게 몰아가는 측면도 있겠다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법부를 둘러싼 상대적 불균형 논란은 여전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특히 상대적 박탈감이 주는 무게까지 더하면 불공정한 법원 판결로 인한 폐해는 훨씬 커 질 수 밖에 없다. 사건 하나하나 불평등을 판정할 만큼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지만 불평등의 목소리를 키우게 된 책임에서만큼은 자유로울 수 없다는 생각이다. 더구나 어려운 이들을 위해 존재해야 할 이들마저 1% 기득권 보호를 위한 전사로 나서는 작금의 작태는 인간을 더 없이 피폐하게 한다. 우리 사회 마지막 양심이고 보루여야 할 법원이나 검찰이 그렇지 못한 현실이 안타깝다.

영화의 내용이 허구다, 흥행을 노린 노이즈 마케팅이다 등등을 운운하며 반발하는 모습은 설득력이 없다.
영화를 탓하기 보다 그 전에 먼저 할 일이 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진실한 반성부터 있어야한다.
사법부를 향한 국민적 분노는 결코 우연의 산물로 넘겨서는 안된다. 사법부가 최소한의 신뢰와 권위를 인정받는 조직이었다면 영화 흥행을 돕는 국민적 반응은 쉽게 찾아보기 힘들었을 것이다.
영화가 흥행하게 된 배경을 좀 더 엄밀하게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영화의 흥행은 석궁을 쏜 주인공에게 보내는 갈채라기보다 불신의 늪에 빠진 사법부의 어두운 현실을 적나라하게 까발린 용기를 향한 국민적 성원에 다름 아니다.
과녁부터 정확하게 정할 일이다.

모처럼 찾아온 폭설이 온 천지를 하얗게 가두었다.
그 속에 슬며시 약속 하나 묻었다.

(2012. 1. 31)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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