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24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 악마적 거래

악마적 거래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양준혁, 강병규 사이의 트윗 설전이 걱정을 낳고 있다.
양씨에 대한 악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낸 채 양준혁 야구재단에 의혹을 제기한 강씨의 트윗이 발단이 됐지만 이전투구의 양상으로 확전되는 상황으로 보면 간단히 수습될 것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치열하게 전개되던 두사람의 공방전은 ‘똥개는 짖어도 기차는 달려갑니다’는 멘션을 끝으로 양씨가 대응을 멈추면서 일단락되는 듯 하지만 만만치 않은 파장이 걱정인 것만은 사실이다.
전반적으로 한솥밥을 먹으며 취득한 내부 정보를 앞세워 공세를 펴는 강씨에 등을 돌리는 분위기지만 이런 저런 내막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양씨나 강씨나 싸잡아 비난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결국 이전투구에 눈이 멀어 공멸을 자초하는 어리석은 군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실패작이 되어버린 형국이다.

그들의 패착이 예사롭게 넘겨지지 않는 건 정치권 작태와 하등 다를 바 없다는 자괴감 때문일 것이다.
상대를 헐뜯어 자신의 것을 채우려는 천박한 탐욕이 판을 치기로 말하자면 더욱 그렇다.
독일의 저명한 사회과학자 막스 베버는 정치인에게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이 필요하다며 ‘악마적 거래’의 당위성을 강조했지만 갈수록 얼굴 바꾸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현실을 지켜보기가 여간 고역스럽지 않다.
차라리 여의도 입성을 위해 치열하게 벌어지는 생존경쟁은 나름의 정당성이 인정된다는 측면에서 봐줄만 하다. 그러나 뒤통수를 향해 쏟아지는 뜨거운 질타는 아랑곳없이 오로지 여의도 재입성을 위한 현역의원들의 몰염치한 행각은 심히 역겹다. 최고의 엘리트라는 자부심이나 자존감은 헌신 버리듯 던져버린 지 실로 오래다. 신의를 저버리고 동료를 끌어내리고 그저 나만 오르면 된다는 식이다. 오로지 권력의 빨대로만 존재하는 허상에 자족하는 그 모습이 실로 안타까울 뿐이다.
며칠 전 설 연휴 첫 날 택시영업을 위해 의정부를 찾은 김문수 도지사와 점심을 함께 하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어제의 동지가 적진에 서서 날선 비판으로 아킬레스건을 공격하는 비정함 넘치는 정치판 속성을 생각하면 당연한 연상일 지도 모르겠다.




김지사와는 소위 말하는 당시 신한국당 입당 동기로 15대 국회를 통해 정치에 입문한 인연이 있다.
김지사는 부천에서 어려운 상대를 꺾고 나는 야당 원내대표로 내정되었다는 현역의원을 누르고 여의도에 입성했는데 동기라는 동질감 때문인지 많은 시간을 꽤 가까이 보낸 기억이 난다. 특별히 의원회관도 같은 층에 있어서 어쩌다 간식거리를 싸들고 가면 벌써 두목감이라고 놀려대던 그의 모습이 정답던 미소와 더불어 아직도 머릿속에 또렷하다. 그가 처음 도지사 선거에 나섰을 때 도당위원장직을 맡고 있었던 터라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열심히 뛰어다닌 기억도 새롭다.

사실 국회에 있을 때부터 그를 많이 좋아했다.
같은 70년대 학번으로 나이로는 5년 연상이었던 그에게 매료됐다. 아마도 학창시절을 치열하게 보낸 그에게 보내는 일종의 경외감이었을 것이다. 어쩌다 그가 고문당한 이야기를 들려줄 때면 온 몸으로 전율을 느끼며 참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정도의 의지라면 이 세샹에 그가 뚫지 못할 난관은 결코 없을 거라는 생각도 했었다. 별로 흠잡을 데가 없는 게 흠이 될 만큼 매사 빈틈이 없는 그의 단정함도 좋았던 것 같다. 워커홀릭이라는 별칭이 딱 어울릴 만큼 그는 정말 일만 하는 사람이었다. 술도 잘 못 먹고 골프도 안치고 여자 친구도 없어 보였다.



그날 점심 자리에서도 그의 전향 동기가 화제에 올랐는데 오래 전 확신에 차 있던 그대로였다. 소련은 물론 동유럽 전체가 공산주의 붕괴를 맞고 있는데 낡은 사상을 붙들고 있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는 취지를 심플하게 설명했다. 그리고 이른바 친북이니 종북이니 하는 사람들이 왜 북한의 인권이나 연평도 문제에는 입을 닫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질책을 했다.
그는 정치현안에 대해서도 거침이 없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만들었던 FTA를 반대하는 야당의 처사를 이해할 수 없다며 손학규 전 지사에게도 섭섭함을 드러냈고 민주통합당 문성근 최고위원에게는 젊은 시절 아버지 문익환 목사가 반체제 운동에 주력할 때에는 어디서 뭐하다가 (이제서야 현실정치에 뛰어들었다고) 일종의 프리라이더 아니냐는 아쉬움을 표출했다. 한나라당에 대해서도 걱정이 많은 듯 했다. 특히 비대위원들의 활동상황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내가 “경기도지사 재선거하는 일은 없게 해 달라”고 당부하자 “지금 한나라당이 이 모습가지고 대선에서 이길 수 있겠는가”라는 대답으로 여운을 남기는 모습을 보였다.
재차 “그래도 박근혜 비대위원장으로 갈 수 밖에 없지 않느냐”고 반문하자 그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답지 않은 침묵이었다.
.........

그러고 점심시간이 끝났다.
그는 택시손님이 없어 오늘 사납금이나 제대로 채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너스레를 떨더니 점심값을 지불하고 다시 일하기 위해 일어섰다. 그의 등 뒤에 대고 “도지사 다시 뽑는 일만은 제발 없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화두처럼 던졌는데 역시나 묵묵부답이었다.
그렇게 총총히 사라지는 뒷모습이 아쉬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앞날을 진심으로 기원했다.
진실로 간절하게 빌었다.
우리의 인연이 뭇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 바닥을 보이는 악연으로 이어지는 일만은 없기를.

(2012. 1.23)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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