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6일 금요일

홍문종 생각 - 300만원 짜리 돈봉투

300만원 짜리 돈봉투


여의도 정가는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다.
이번에는 난데없이 튀어나온 ‘300만 원짜리 돈봉투’가 신년 벽두를 달구고 있다.
때 지난 금권선거가 유탄이 되어 사력을 다해 회생의지를 다지고 있는 한나라당을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18대 국회 당시 당 대표 선거를 앞두고 한 친이계 후보가 건넨 돈 봉투를 돌려준 적이 있다’는 고승덕 의원의 폭로가 그 진원지인데 만만치 않은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고 의원 주장의 당사자로 현 국회의장을 포함한 2명의 전직대표가 압축되는 분위기지만 정작 손사래를 치며 극구 부인하는 모습이다. 누군가는 확실히 거짓말을 하고 있는 셈이다. 한나라당이 검찰수사를 의뢰했으니 조만간 진위여부가 밝혀질 것이나 수사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진통은 불가피하다는 생각이다.
그나마 한나라당 비대위가 발 빠른 대응으로 나서서 다행이다. 한나라당에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희망도 남아있다. 진실을 밝혀가는 과정을 통해 국민 눈 밖에 난 여당이 국민 열망에 맞는 정당으로 재정립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건을 지켜볼 생각이다.

그런데 상황이 묘하게 흘러가고 있다.
고의원의 ‘내부고발’(?)을 정의감의 발로로 무게를 두기보다 이 생뚱맞은 폭로가 왜 하필 지금 시점에 터졌느냐는 식의 의혹에 더 큰 관심이 쏠리는 정황이다. ‘전당대회 후유증으로 돈 봉투의 쓴 기억을 언급했을 뿐 특정인을 겨냥한 폭로 의도는 없었다’는 해명에도 불구하고 그의 처신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는 게 사실이다. 갈수록 고의원의 입지가 곤혹스러워지는 조짐이다. 설화였다면 더 없이 경솔한 것이고 의도한 결과라면 제일 하책을 선택했으니 변명거리가 궁색해지는 것도 당연할 터다.
무엇보다 집권여당 대표가 선거 과정을 염두에 두고 싸늘하게 대하더라는 그의 부연설명은 대한민국 정치현실을 바닥까지 끌어내리는 ‘한방’이기에 충분했다. ‘아이고, 정치가 뭐 길래’ 하는 신음소리가 절로 새어나오게 했다.
역시나 재승박덕의 우려가 괜한 것은 아니구나 싶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20년 정치인생을 살았다. 아버지 시절까지 따지자면 거의 반세기 동안 정치판을 지켜본 셈이다. 나름의 관록(?)으로 감히 거들자면 오늘 날 정치 플레이어들의 가장 큰 패착은 ‘지피지기’의 기본 수칙을 깡그리 무시하는 경박함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국민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국민의 정밀한 레이더망에 관찰당하고 있는 실체가 자신들이라는 생각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한다. 그 어리석음이 스스로를 영원히 하수에 머물게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한 헛발질하는 비극은 아마도 멈춰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치인들의 어긋남을 떳떳하게 나무랄 수 있을 만큼 구색을 갖추지 못한 정치 여건도 문제다.
정치 환경이 급속도로 투명해지고 있다지만 애매한 규제 때문에 고통당하는 정치 플레이어들과 관전자들이 존재하는 현실은 반드시 짚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고승덕 의원이 폭로한 관건선거만 해도 그렇다. 일반 선거 과정에서도 그 같은 정황에서 완벽한 결백을 주장할 수 있는 정치인이 몇이나 될까 싶다. 고시공부 하듯 탐구해야 비로소 이해가 가능한, 지나치게 복잡한 적용 조항도 그렇고 기존에 알려진 사람이 아닌 정치신인들의 경우 자신을 알릴 방도가 거의 없는 각종 규제들로 초조해지기 일쑤다. 그러다 결국 무리수를 두는 결과를 초래하게 만드는 선거법이 항상 문제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물론 표 매수나 향응 등 명확하게 공명선거를 방해하는 불법 행위는 가차 없이 처벌하는 게 맞다. 그러나 선거가 지금처럼 법망을 피하기에 급급한 형태로 지속된다면 유권자의 선택이 음지의 산물로 고착될 수도 있다는 걱정이 없지 않다.
선거를 밝고 즐거운 국민적 축제로 만들면 어떨까 싶다. 필요하다면 선거법도 더 전향적이고 진취적으로 개정해서 선거를 카타르시스의 장으로 만드는 생산적 에너지로 전환시켜야 한다는 생각이다.

집안이 가난하면 어진 아내가 필요하고 나라가 어지러우면 훌륭한 재상이 필요하다고 했다.
어려워진 한나라당을 위해 구원투수로 나선 비대위원들의 어진 아내와 훌륭한 재상의 역할을 기대한다.
그리고 더 이상 여당의 전당대회가 부끄러운 흔적으로 회자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는 다짐을 마음에 새긴다.

(2012. 1. 6)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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