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 30일 토요일

홍문종 생각 - 고정관념

고정관념
병석에 계시면서 아버지가 많이 약해지셨다.
걱정도 부쩍 늘어 세상사 대부분을 근심으로 받아들이시는 기색이 역력하다.
특히 장남인 내게는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걸어 이런 저런 당부를 채근하실 정도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 가슴이 뭉클해질 때가 많다. 예전만 못한 기력 때문에 더 이상 자식의 든든한 뒷배가 되어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아버지의 조급함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어쩔 땐 미처 다 풀어놓지 않은 아버지의 의중까지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아마도 세 아이의 아버지 위치에 놓인 나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얼마 전 바쁜 와중에 무리하게 강행한 미국행 일정도 사실은 그곳에 가 있는 자식들 때문이었다. 예사롭지 않은 무더위와 뒤숭숭한 현지의 정황 등이 아이들 안위에 대한 불안으로 이어졌고 급기야 직접 가서 확인해야겠다는 판단을 이끌어내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막상 아이들을 만나보니 내 조바심과는 달리 훨씬 더 현명하고 씩씩한 모습으로 그 곳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었다. 오히려 틀에 갇힌 나의 한계를 견인해주는 느낌이 들만큼 생동감 있는 모습이었다. 내 아이들이 내 손길을 필요로 할 거라며 불원천리 달려온 내 오지랖은 잘못된 고정관념에 의한 기우인 것 같아 머쓱해졌다. 
 
( 케임브리지에서 사랑하는 세아이들과 함께~♥ )

뉴욕에서의  또 다른 경험도  기존의  시각을 점검하는  빌미가 됐다.    
수백 쌍의 동성애 커플 결혼식이 상당히 큰 이슈로 다뤄지고 있었는데 현지 방송이 연일 이들에 관한 소식을 보도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 사람들 뿐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의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었다.
솔직히 오십 몇 년을 살아오면서 이 일만큼 혼란을 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크리스틴 퀸 뉴욕시 의장이 동성애자라고 공개적으로 밝힐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놀라웠다. 개인적으로 한 번도 동성애를 심각하게 고려해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당연한 반응일지 모른다. 그럴 만큼 한가하지도 않았지만 그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기울여 본 기억이 없었다. 그런 만큼 나는 확실히 동성애자들과 다른 성향의 소유자임에 틀림없다 할 것이다. 하바드대학 학생회장이 동성애자라는 이야기를 재학중 접했을 때도 남의 일에 불과했던 나였다.

그런데 미국인 친구 A는 나와 생각이 달랐다. 그동안 언론 보도 등을 접하면서 동성애에 대한 의식에 변화가 생겼다고 했다. 그렇다고 동성애를 동의하거나 찬성한다는 의미는 아니고 다만 그동안 절대적으로 아니라고 생각했던 문제들에 대해 다시 한 번 되짚어 보겠다고 했다. 한 방송에서 동성애 커플의 인터뷰를 접했는데 그저 좋았을 뿐인 자신들의 선택이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왜 지탄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그들의 항변도 그렇고 (동성애 합법화로) 기회를 준 뉴욕시와 미국에 감사하다며 마냥 행복해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니 마음에 묘한 파장이 일더라는 고백이었다.
 
친구의 갈등은 내게도 긴 여운을 남겼다.
‘소수의 가치는 정말로 사회적으로 존중받을 가치가 없는가? 비주류의 가치는 절대적으로 다수의 공적 마인드가 될 수 없는 선천적 한계를 안고 있는가? 반사회적 기준이면 문제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다수의 평화가 보장되는 선택이야말로 최고의 선택이 되지 않을까? 과연 우리의 선택은 어떤 것이 될까?’ 등의 의문들이 뉴욕에 머무는 동안 나를 사로잡았다.

사안이 있을 때마다 공공정책을 입안하는 입장이 되곤 하는 내게 A의 갈등이 선택에 대한 의문부호로 전이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아무리 미물이라도 저마다 살아야 할 가치가 있는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선택과 판단이 다수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백안시되는 현상에 대해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미국 사회의 도덕적 타락이 결국 미국의 파국을 부르는 촉발점이 될 거라고 믿고 있으면서도 동성애를 비롯한 낙태나 총기소지 등에 대한 미국의 선택을 특정한 방향으로 고정시키는 게 과연 옳은가에 확신이 서지 않았던 점도 일정정도 작용했을 것이다.
( 하바드 대학교 설립자
죤 하버드(John Harvard)의 동상 앞에서... )
 
나의 생각을 가두는 고정관념의 틀은 여전히 건재한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연한 계기가 스스로의 생각(고정관념, 편견, 노파심 등)을 되짚어보거나 새로이 정립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충분히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내 기본적인 생각이 변한 건 아니다.
그러나  습관적  선택에 의해  단순한 감정적 판단 만으로  예단하던 기존의 고정관념에서 조금은 더 자유로워져야겠다는 생각은 확실한 나의 변화라고 할 수 있겠다.
                                        (2011 . 7.30)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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