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 22일 금요일

홍문종 생각 - 파국을 부르는 탐욕

파국을 부르는 탐욕

아이들을 만나러 미국에 와 있는데 두 가지 이슈가 관심사로 부각되는 분위기다.
미국의 디폴트 가능성과 언론재벌 루퍼드 머독의 불법도청 사건이 그것인데 양 사건 모두 간단치 않은 파장을 예고하며 뉴스의 중심에 서 있는 상황이다.
지나친 욕심은 결국 인간이나 시스템을 파멸로 이끌게 되는 것 같다.
아무런 연관이 없을 것 같은 두 사건이 ‘절제되지 않은 탐욕’이라는 공통분모로 얽혀있는 정황은 흥미롭다. 지나친 예단일진 몰라도 세계의 경찰국가를 자처하며 오만의 극치를 달리던 미국과 무제한의 언론 권력을 절제하지 못하다가 제 덫에 걸려버린 머독의 과오는 비슷한 결론을 내포하고 있다.


다른 나라도 아닌 미국이 재정악화로 디폴트 위기에 직면하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34년 전 처음 미국 땅을 밟을 당시의 충격을 생각하면 오늘 날 미국의 현실은 도무지 실감나지 않는다.
정치적 합의에 명운을 걸고 움직이는 미국 정부의 발걸음이 천근의 무게다. 다음달 2일까지 채무한도증액 협상에 실패할 경우, 디폴트 사태가 불가피할 거라는 위기감도 부담을 더하는 형국이다.
활로를 찾는 시장의 긴박한 움직임도 위기에 처한 미국의 현실을 대변하고 있는 듯하다. 실제로 월가의 금융사나 뮤추얼 펀드들도 자산 포트폴리오를 재검토하거나 국채매각 여부에 대해 검토하는 등 디폴트 사태를 대비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세금을 깎느냐, 사회보장 규모를 줄이느냐 하는 따위의 진부한 논쟁으로 미국의 위기가 해결 될 것 같지는 않다. 부채한도를 임시 증액하는 비상 대책 방안이 거론되기는 하지만 그 역시 국가신용등급이 강등되는 상황을 감수해야 하는 만큼 진퇴양난에 빠진 미국을 구해 낼 묘책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사실 미국의 오만을 향한 원성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번 여행 과정에서도 그 건재함(?)을 확인한 바다.
입국심사 동안 불친절과 무례함으로 일관하는 공항 이민국 관리들의 오만불손은 여전했다. 영어를 못하는 입국객에게는 어김없이 노골적인 비아냥과 짜증으로 업신여기는 태도를 보였다. 마일리지 덕분에 우등 칸을 이용하게 된 델타항공은 대한민국 비행기는 전부 우등칸이라는 생각이 들만큼 실망스러웠다. 떨어져 나간 의자가 방치돼 있었고 기내식은 너무나 성의가 없었다. 짐은 왜 그리도 한참 만에 나오는 건지... 특히 바가지 상혼이 판을 치는 뉴욕은 거대한 미국 시스템의 추락을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상황실 같다는 느낌이었다. 결국 파산이라는 극한상황은 피할 수 있겠지만 이번 국면이 미국에 던지는 시사점은 유념할 필요가 있다. 단언하건데 미국이 청교도 정신(신앙적인 면보다는 성실과 근면 측면에서)의 초심을 찾지 못한다면 미국의 회생은 요원하다고 본다. 그 어떤 수단도 짧은 노동과 긴 휴식 그리고 최고의 월급을 충족시킬 수 있는 방도로 대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이 대각성 운동 등으로 새로운 국민적 정신 무장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더 이상의 미국은 없다는 생각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막강하고 완벽한 나라로 존재했던 명성은 박물관에서나 찾게 될 한 때의 추억으로 전락하게 된다는 위기감을 현실로 받아들여야겠다


머독 사건은 특종을 노린 미디어의 탐욕에서 비롯된 불법행위를 핵심으로 보이기도 하고 인간사를 관장하고 싶은 욕망으로 신의 영역을 침범한 인간의 어리석은 과욕이 빚은 해프닝으로 판단되기도 한다. 팔순의 노구를 이끌고 청문회장에 나선 머독의 모습을 제대로 산 인생으로 평가할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심지어 머독 스스로 조차 자신의 그런 모습을 혐오스러워 할 가능성이 높다. 지나친 탐욕이 머독 자신의 인생은 물론 기업의 미래에까지 누를 끼친 셈이다. 조금만 살펴도 지나친 욕심을 바탕으로 한 경쟁심이, 한 인간을 이기고 싶은 절박함의 포로로 만들어 파멸로 이끈 결론을 비일비재하다.
머독이 자초한 망신살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영역 너머를 넘본 절제되지 않은 탐욕이 문제였다. 어떤 의미에서는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알고 이를 인정하는 한편 우연한 기적에 현혹 되어서는 안된다는 경고로 해석될 수도 있다. 기적은 말 그대로 기적일 뿐이고 단지 최선을 다해 감사하는 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몫임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으로 말이다. 그러다 간혹 특별한 상황에서 기적을 경험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신의 영역에만 속해있는 범주임을 인정하는 혜안을 요구하는 신의 목소리가 아닐까 생각하는 건 지나친 상상력일까?


세계가 요동치고 있다.
국제사회의 질서와 패러다임이 속속 바뀌고 있는 이 즈음, 그 어느 때보다 성실한 땀의 노력이 필요한 현실이다. 우리도 게임에 참여할 자격을 부여 받은 이상 노력을 등한시해서는 안되겠다. 세계사의 흐름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이를 위한 정보수집이나 분석하는 과정에 공을 들이는 건 물론이다. 자칫 한눈팔다간 공염불이 되고 말 일이다. 특히 미래를 기약하는데 있어 도덕과 신뢰는 빼놓을 수 없는 절대적 가치임을 가슴 속에 새기다.
그렇게 파국을 부르는 탐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도록 하자.
더불어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도록 미리미리 준비할 것을 권면하는 바다.

PS: 20년 만에 찾은 하버드 캠퍼스에서 지난 청춘을 회고하는 호사를 누렸다.  백발이 성성해진 옛 지인들과 반가운 회포를 풀었는데 폭포수 같은 덕담으로 기운을 북돋아주는 그들에게서 아직은 건재한 미국을 확인 할 수 있어 좋았다.


(2011. 7. 22)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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