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 3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내려놓기의 비밀

'내려놓기'의 비밀

수사권 조정을 둘러싼 검경 간 오랜 갈등이 일단락되는 분위기다.
경찰관에 대한 검사 지휘의 구체사항을 ‘법무부령’이 아닌 국무회의 심의가 필요한 ‘대통령령’으로 정할 수 있게 하는 내용 등을 담은 형사 소송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됐다.  정치권력이 관여하면  정치적 중립을 훼손하고 국민 권익을 헤치게 된다는 검찰의 항변이 설득력을 얻지 못한 것이다.
검찰의 처지가 말이 아니게 됐다.
무엇보다 찬성 175, 반대 5로 압도적인 표차를 보인 국회 표결 결과는 명백한 검찰의 참패를 선언한 것과 다름없다는 생각이다.   초유의 지도부 공백을 초래한 검찰 간부들의 줄 사표조차 별다른 사회적 반향을 부르지 못한 상황은 추락한 검찰 위상을 반영하는 현실이라 하겠다.   민심을 얻지 못한 권력이 얼마나 보잘 것 없고 허무한 실체인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길가는 사람을 붙잡고 대한민국 검찰 권력의 현실을 묻는다면 어떤 반응일까?
모르긴 몰라도 ‘절대 권력’이라는  가차없는 대답이 돌아오지 않을까 싶다.   더 나아가 그동안 검찰이 정치적 중립에 충실했느냐는 질문도 결코 긍정적인 답변을 들을 수 없을 것이라는 짐작이다.
그것이 국민 눈에 비친 검찰의 현실이다.
실제로 검찰은  피의자 인권을 위해 법 전문가적 관점에서 사용하라고 쥐어준 ‘권한’을 자기 보신과 권력 유지를 위한 용도로 남용하는 집단이라는 시각이 국민 의식을 지배하고 있다. 수사권을 둘러싼 검찰 움직임은 국가의 미래와 사회 공동체 발전보다는 조직 이기주의에 빠진 권력 집단의 기득권 수호를 위한 몸부림 정도로 치부한 채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게 민심의  실상이다. 
국민 마음이 그러니 설득되지 않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는 생각이다.
결과적으로 검찰은 민심을 얻는데 실패했고  또 그것이 수사권 싸움에서 검찰을 패하게 만든 결정적 요인이기도 하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검찰에 대한  오래된 지적 처럼  ‘절대 권력의 지나친 오만’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우연히 경찰 고위직 간부들을 대상으로 강연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도 검찰의 오만함을 지적하는 푸념이 주를 이루는 분위기였다.
이번 사건만 해도 집단 반발하는 검찰 모습은 사려 깊지 못하다는 생각이다.
사안의 옳고 그름을 가리기에 앞서 권력을 쥔 집단이 대통령이나 국회를 상대로 ‘겁박’을 가하는 모습은 오만불손한 태도로 비춰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두려운 집단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면서 본의 아니게 국민들에게 천근만근의 무거운 무게를  얹어주는 존재로 부각되기에 충분한 정황이었다. 
그런 검찰의 모습이  돈 있는 사람의 미덕은 절제에 있고 힘 있는 사람의 미덕은 겸손에 있다는 선인의 가르침을 떠올리게 한다.  절제와 겸손을 통해 절대 권력이 방만함으로 오만해지는 폐해를 최소화하고자 했던 지혜에 새삼 탄복하게 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김준규 검찰총장은 취임 당시 ‘검찰의 상대는 범죄 그 자체이며 죄를 저지른 사람의 지위나 신분의 높고 낮음 등은 고려하지 않아야 하고 공직 부패와 사회적 비리에 대해서는 일절 관용이 없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우리 사회의 왜곡된 기득권 구조를 허물겠다는 신선한(?) 각오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사의 표명으로 사법 개혁에 대한 국회 결정에 반발하고 있는 건 심각한 자기모순이 아닐 수 없다.   김 총장이 자신의 초심대로만 매진했어도 검찰조직을 보는 민심의 향배는 지금과는 많이 다른 양상을 보였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비뚤어진 사회정의를 바로잡고 준법정신으로 무장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진정성이 있었다면 무엇보다 먼저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가장 기초적인 해법을 그가 정녕 몰랐을까 싶기도 하다. 

이미 등을 돌린 민심을 향해 아무리 크게 외친들 들릴 리 없다.
검찰을 편들어주지 않고 고립무원에 빠뜨린 민심의 준엄한 심판을 받은 셈이다.  최소한 움켜쥔 손을 펴기만 했어도 독립성과 중립성을 지키겠다는 검찰의 항변은 좀 더 많은 원군을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애타게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도 지금보다 훨씬 수월하게 국민에게 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작금의 어수선한 현실이 아픈 자화상이 되어 가슴을 친다.  종국에는 스스로의 숨통을 옥죄며 표류하게 될 그 뻔한 결말조차 예측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가  슬픔으로 다가온다. 
 재벌은 재벌대로 제 성에 찰 때까지 고집을 부리고 있고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검찰은 검찰대로, 심지어 학생들마저도 자기들 뜻대로 하려는 움직임 밖에 보이지 않는다. 국가의 명운은 안중에 없이 저마다 주인 행세로 분주하지만 정작 마음 둘 곳은 찾지 못해 서성거리고 있는 모습들이 안타깝다.
아마도 브레이크 없는 벤츠를 지켜보는 불안감이 이런 기분 아닐까 싶기도 하다. 각 집단마다 자기 성찰과 깨달음을 통해 거듭나고자 하는 의지를 가동시켜한다는 조급함이 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여지가 조금은 남아있기에 아직은 늦지 않았다는 생각이다.
 희망을 품자, 공공의 선을 충족시킬 수 있는 공정사회를 위해 사욕의 질주를 멈추면 최소한 지금보다는 더 행복하고 조화로운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  
가능성의 포자를 퍼뜨리는 주체로 나서자,  아무리 민감한 이슈라도 그때 마다 사익에 방점을 두기보다 역지사지의 관점으로 풀고자 하는 노력이 가동된다면 구성원들의 삶의 질 향상에도 크게 보탬이 될 수 있다.  동행하는 삶과 함께 양보와 타협을 통해 업무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
 그렇게 '내려놓기'  비밀 풀기에 돌입해서 건강한 대한민국을 세워 보도록 하자. 
우리가 할 수 있다.                   (2011.  7.  2)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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