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 17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올챙이 적을 생각해!!

올챙이 적을 생각해!!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법칙(?)이 제일 잘 활용되는 현장을 꼽는다면?
단연 정치권 아닐까 싶다. 형편에 따라 조변석개 하는 인간의 한계를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곳 역시 이곳으로 지목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생각이다.
정치 현장에 있었던 개인적인 경험을 돌이켜봐도 정치적 반사 이익을 노린 정당의 의도에 따라 국회의 전쟁과 평화가 결정된다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 싸우는 모양새로만 보면 국회가 최고의 엘리트들이 모인 집단이라는 사실을 잠시 망각하게 될 정도다. 민망하긴 하지만 ‘싸움 솜씨’에 따라 정치력이 평가되는 측면도 있다.

권재진 청와대 정무수석의 법무장관 내정에 대해 설전을 벌이고 있는 정치권 공방도 별반 다르게 보이지 않는다. 늘 반복되는 현상이긴 하지만 여전히 정론이고 합리적인 설득 논리고 존재가치 자체가 불필요한 현장이다. 정권 교체로 여야 진용만 달라졌을 뿐이다.
상황이나 공수논리는 어찌 그리도 변함이 없는지 마치 참여정부 시절로 ‘back to the future' 했나 헛갈릴 정도다.
참여정부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대선 1년여를 앞두고 문재인 정무수석을 법무장관에 기용하려다 ‘대통령 측근 기용은 대선의 공정성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는 야당의 강력한 반발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5년이 지난 지금 그 때의 정황이 고스란히 ‘데자뷔’ 되고 있다. 측근 인사를 법무부 장관에 기용하려는 권력의 의지나 이를 방어하고 공격하는 여야 공방의 재현을 통해서다.
이 과정에서 여당은 야당으로, 야당은 여당으로 바뀐 현실 때문에 기존 발언을 부정해야 할 처지에 놓인 발언 당사자들의 입장이 딱하게 됐다. 입으로는 국민을 팔고 정작 자신들을 위해 싸움을 불사했던 실체를 들킨 민망한 현실에서 실명까지 거론되는 마당이니 오죽 할까 싶다. 하긴 사람에 따라 무조건 이기는 것이 미덕인 정쟁의 실상과 선택의 여지가 없는 불가피성을 들어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는 경우도 있겠지만 말이다.

‘각 당에서 1백 명 씩의 지도자를 뽑아 머리의 크기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짝을 지어 놓는다. 그런 다음 훌륭한 의사로 하여금 톱으로 머리를 둘로 절반으로 나누어 잘라낸 반쪽을 반대편 정당의 사람에게 붙인다. 이렇게 두 개의 뇌가 하나의 두뇌 속에서 논쟁을 하게 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를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하면 세상을 다스리고 감독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정치인들의 머리에서도 국민이 무척이나 바라는 조화로운 사고와 중용이 생겨나게 될 것이다’
1726년 영국의 작가 조너선 스위프트가 ‘걸리버 여행기’라는 풍자소설을 통해 처방한 일종의 ‘정쟁화해법’인데 기발하다. 달라지지 않은 정치권 행태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황당하긴 하지만 갈수록 개념을 잃어가는 정치권 정쟁의 속내를 꿰뚫고 그들의 몰염치를 향해 일갈하는 작가의 시선이 통쾌하기도 하다.

아무리 첨예한 이해관계(권력 쟁취)가 얽혀있다 하더라도 ‘역지사지’ 철학이 개입된다면 정치판 위상이 조금은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비단 정치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노사간, 사제지간, 부모자식간 그 어떤 갈등 현장도 역지사지의 놀라운 힘은 기적을 만들어 낼 것이다. 객관성과 공정성을 기반으로 한 공론장이야말로 모든 관계를 풀어낼 수 있는 마법의 열쇠다. 상대방 입장에서 나와 다른 이해관계를 받아들이고 배려한다면 싸우지 않고도 얼마든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고 합일점을 이끌어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데 있어 더없이 취약한 현실이다.
세계적으로 남다른 교육열을 자랑하면서도 정작 배려에 대해서는 더없이 무관심했던 사회적 풍토와 무관하지 않다. 대통령이 국민의 입장을 먼저 생각했다면, 재벌이 노동자를 먼저 배려했다면, 선생님이 학생을 먼저 존중 했다면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이 위기 국면은 그 양상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사회적 지위를 위한 스킬이나 테크닉 못지않게 중요한 인간 존중을 외면해왔던 교육제도의 개선이 시급한 이유다.

역지사지와 배려에 필요한 교육과정은 물론 제도 마련과 전문가 양성을 통해 상식의 대원칙에 부합하는 사회적 틀을 조성하고 이를 생활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더 나아가 인성교육을 KS마크처럼 규격화 하고 검증하는 체계를 통해 인증할 수 있는 제도화 하는 방안을 고려해볼만 하다. 일정한 자격을 인정받고 배출된 우리의 미래 인력들이 국제무대에서 활동할 때 객관적 자료로 활용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뿐만 아니라 역지사지의 포용력은 대한민국의 글로벌 리더십을 위해서도 더 없이 훌륭한 발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이나 중국 등 동양권은 물론 미국 등 서양 국가와의 교류에서도 상대국 입장을 좀 더 넓고 큰 관점에서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우리의 입장을 전개한다면 더 큰 역할의 대한민국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런 측면에서 역지사지를 위한 훈련은 세계 지도자의 소양을 키우는 중요한 시간인 셈이다.

천리 길도 한걸음부터라고 했다.
그러면 우선 글로벌 리더의 첫 걸음으로 최소한 올챙이 적을 기억하는 개구리부터 되어 보도록 하자.                                    

 (2011. 7. 17)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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