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 25일 월요일

홍문종 생각 - 아마겟돈

아마겟돈


대규모 인명이 희생된 테러가 발생해 전 세계가 또 다시 혼란의 도가니다.
이번에는 자타가 공인하는 평화의 나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나이 어린 청소년을 대상으로 범행이 자행됐다. 무엇보다 이슬람교에 대한 극단적 증오심을 가지고 있는 극단적 기독교주의자로 알려진 범인이 뉘우치는 기색은커녕 자신의 범행을 신념으로 미화하는 등 ‘무죄’를 주장하고 있어 충격의 강도를 더하는 분위기다.
우연의 일치인지 때 마침 여행 중 집어든 책(사이토 다카시라는 일본 대학교수가 쓴 ‘세계를 움직이는 다섯가지 힘’)에도 종교 간 갈등을 다룬 내용이 들어있었다.
인간이 영적인 존재를 믿는 건 ‘인간의 지혜를 뛰어넘는 위대한 힘에 자신을 바치는 대신 정신적인 안정감을 얻기 위함’이라고 정의하는데 신앙의 근본과 인간이 자아를 버리게 되는 원인도 이와 다르지 않다는 기조가 저자의 시각이다.
그런 그가 사랑을 모토로 삼는 기독교가 제국의 야망과 하나가 되고, 비교적 관용적인 이슬람교가 지구촌 분쟁의 불씨가 되어버린 아이러닉한 종교 현실에 대해 나름의 시각을 동원했는데 흥미롭게 읽혀졌다.
그러나 읽는 내내 기독교와 이슬람의 갈등을 축으로 전 세계가 극단적인 대결구도로 분열되는 현실을 고민했다. 이대로 가면 파멸로 이어진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어떻게 해서든 해법을 찾아내야 한다는 강박감에서 좀처럼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런데 그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전 세계를 경악시킨 노르웨이 테러가 발생했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기막힌 타이밍이어서 전율이 느껴질 정도였다.

뉴욕 한 복판에 고스란히 보존된 테러현장을 통해서도 종교 분쟁의 주홍글씨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9.11 테러의 트라우마를 수인번호처럼 매단 Twin Tower 자리는 'Ground Zero'라는 이름으로 개명된 채 전 세계 사람들이 찾는 성지가 되어 있었다.
수십만 관광객들에게 테러리스트(이슬람 무장단체)들이 얼마나 심각한 만행을 저질렀고 얼마나 극악무도한 폭력을 휘둘렀는지를 최첨단 테크놀러지 장비를 다 동원해서 최대한 보여주고자 애쓴 흔적이 역력했다. 마치 테러단체는 그 막대한 과오 때문에 어떤 보복성 대가를 치러도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는 압력처럼 비쳐졌다. 특히 9.11 테러 당시 거대한 쌍둥이 빌딩이 순식간에 초토화되는 충격에도 불구하고 바로 인근에서 멀쩡히 살아남은(?) 트리니티 교회(뉴욕 최초의 교회)의 기적을 빼놓지 않았는데 마치 기독교 승리의 상징인양 부각시키고자 하는 뉘앙스가 느껴졌다. 그야말로 전 세계 사람들을 상대로 이슬람교에 대한 증오가 차곡차곡 쌓이도록 세뇌하는 작업이 소리없이 진행되는 셈이었다.

종교 갈등의 여진은 일상 속에서도 거의 횡포에 가까운 형태로 표출되고 있었다.
미국 공항의 입국심사대를 거칠 때마다 아랍인처럼 생긴 사람들은 예외 없이 한쪽 구석으로 끌려가 몸수색 당하는 일이 빈번한데 이슬람교에 대한 미국사회의 증오심을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간혹 동행한 어린 아이들이 ‘Mom, Mon’ ‘What's going on mommy?’ 등의 영어를 구사하는 것을 보면 아랍계 미국시민임에 틀림없어 보이는데도 그들의 수난은 통과의례가 됐다.
비슷한 정경이 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있었다.
2차 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당시 미국에 살던 일본인들은 미국 정부에 의해 사막지대 수용소에 격리되거나 따돌림을 당했다. 일본의 진주만 공습 이후의 벌어진 일이다. 실제로 일본에 대한 적개심이 극에 달한 미국인들이 자국 내에 있는 일본인들을 시민권 여부와 관계없이 단지 일본 혈통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도 학대했다. 감정적인 애국주의, 일종의 징고이즘에 시달렸던 것이다. 같은 시기에 나치에 시달렸던 유태인의 처지도 다르지 않았다. 아우슈비츠로 상징되는 유태인 학살의 역사 역시 정도는 다르지만 그 뿌리는 비슷하다 할 것이다.
종교 갈등이 끔찍한 무차별 테러로 표출된 노르웨이 사태는 더 이상 노르웨이만의 문제로 볼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이번 한번으로 끝날 것 같지 않다는 데 사안의 심각성을 고민해야 한다.
심지어 아마겟돈의 시작을 알리는 전초전에 불과할지 모른다는 과다한 생각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사토이 다카시 교수의 걱정처럼 아무도 승복 할 수 없는 종교 전쟁은 결국 인류가 파멸해야 끝나게 되는가 싶은 좌절감에 울컥하는 심정이 된다. 카톨릭을 합한 21억의 기독교와 17억의 이슬람교가 끝까지 해 보겠다고 설쳐댄다면 결국 인간 파멸의 서곡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손놓고 쳐다만 볼 수는 없는 일.
우선 우리 형편부터 점검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다.
아직은 국내 이슬람교도 세력이 그다지 활성화 되지 않은 건 다행이다.
하지만 갈수록 빈도수를 높이고 있는 기독교와 불교 간 마찰이 우려를 낳을 정도인 건 사실이다. 기왕에도 종교 마찰로 인한 동족상쟁의 여파로 제살을 깎았던 나라가 없던 게 아닌 만큼 우리라고 마냥 안심할 처지는 아니다.
싸우면 안 된다. 누구 좋으라고 싸움을 하는가. 동족끼리의 갈등과 반목은 서로의 피해영역만 확대하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할 일이다.
기독교는 사랑을 말하는 종교다. 사랑의 힘으로 나와 다른 종교적 신념을 가진 사람들을 포용하자. 자비의 불교도 마찬가지다. 자비의 동력을 앞세워 민족과 민족을 하나로 묶는다면 바람직한 결과가 나오지 말란 법도 없다.

종교 갈등이 극에 달한 세계사에 통쾌한 해법 제시로 대한민국 리더십의 위용을 세워보는 건 어떨까?
믿는 구석이 있다.
소유를 향한 저마다의 욕망을 양보하면 뭔가 답이 되지 않을까 하는 은근한 기대감이 그것이다.        (2011. 7. 25 )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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