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 30일 금요일

홍문종생각 - 용서와 화해

용서와 화해



정치하는 사람 치고(호불호를 떠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삶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본다. 특히나 큰 정치를 꿈꾼다면 반드시 연구대상으로 삼아야 할 정치인 중 최우선 순위로 꼽히는 인물이다. 그만큼 우리의 현대 정치사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서거 1주기를 맞아 세상에 나온 그의 ‘회고록’에 쏠리는 세간의 관심이 예사롭지 않다.

‘서자’ 신분이었던 출생의 비밀부터 YS와의 단일화 실패, 연예인 김미화에 대한 코멘트에 이르기까지 비교적 세세하게 삶의 흔적을 담은 그의 회고록에서 특별히 내 눈길을 끄는 대목은 박근혜 전대표를 언급한 내용이었다.

실제로 김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 2004년 8월 정적(政敵)이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자신을 찾아와 “아버지 시절에 여러 가지로 피해를 보고 고생하신 데 대해 딸로서 사과 말씀드립니다”라고 말한 일을 소개하면서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나’ 했다. 박정희가 환생해 내게 화해의 악수를 청하는 것 같아 기뻤다. 사과는 독재자의 딸이 했지만 정작 내가 구원을 받는 것 같았다”는 소회를 남겼다.

아버지를 대신한 박전대표의 사과에 구원을 받은 것만큼 기뻤다는 노정객의 솔직한 고백이 가슴에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용서와 화해가 그려내는 한편의 감동적인 대서사시를 보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인간을 동물과 차별화하는 정서 중에서 용서와 화해만큼 인간의 위대성을 부각시키는 기능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일상을 둘러보면 말처럼 수월하게 용서와 화해가 이뤄지는 건 아니다.

선뜻 사과하기도 그렇지만 용서 역시 쉽지 않은 현실을 감안하면 그렇다.

내게도 지금까지 인생을 살아오면서 도저히 용서가 안되는 몇 몇의 인연이 있다. 지금으로서는 상대가 어떤 식의 사과를 한다 해도 쉽사리 포용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깊은 앙금이다.

그런데 박근혜 전대표의 사과와 관련한 김 전대통령의 술회는 (역사적 평가는 차치하고) 우리가 놓지 못하는 반목의 앙금들을 다시금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때부터 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는 ‘용서’의 화두는 중복을 맞아 모인 가족모임에까지 따라붙었다. 작고한 지 5주기 째가 되는 동생 때문이었다.

동생은 지병으로 세상을 뜨기 직전까지 일기를 기록했는데 형인 내게 미처 말하지 못했던 심중의 이야기도 많이 담아 놓아 읽을 때마다 가슴을 짠하게 만들었다.

그 중 중학교 때 없어진 돈을 절대로 가져가지 않았다고 강조해 놓은 부분은 쉽사리 덜어낼 수 없을 마음의 짐이 되고 말았다. 동생에게 해 주지 못한 미안함 중에서 가장 무거운 무게로 말이다. 동생이 죽기 전에 말해주었더라면, 아니 내가 미리 사과할 기회가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아무 쓸모도 없다.



연로해지는 부모님께서도 가끔 주위에 사과하고 싶거나 용서하고 싶은 지인들과의 일들을 말씀하신다.

특히 젊었을 때 이런 저런 연유로 소원해진 인연들에 대해 많이 아쉬워하시는 것 같다.

부모님들 대신이라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내가 나서서 용서를 구하거나 화해하고 싶은데 '길'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고 보면 잘못한 일에 대해 솔직하게 용서를 구하는 일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인간답게 만드는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용서를 구하는 상대를 품어주는 일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고 보니 김대중 전대통령으로부터 새로운 과제물을 부여받은 느낌이다.
(2010. 7. 30)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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