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 14일 수요일

홍문종생각 - 문어와 월드컵

문어와 월드컵

축구 하나로 지구촌 전체가 울고 웃으며 행복해 하던 시간이 꿈결처럼 지나가 버렸다.
스페인이 오랜 불운을 딛고 80년 만에 축구 최강국의 권좌를 차지하면서 월드컵 축제가 막을 내렸다.

스페인과 네덜란드 결승전을 앞두고 많은 사람들이 내기에 나섰는데 나는 네덜란드를 우승후보로 꼽았다. 스페인 전력을 우위로 판단하면서도 네덜란드 승리에 힘을 싣게 된 건 순전히 ‘월드컵 점쟁이’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문어 팔머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팔머의 스페인 간택(?)이 나로하여금 거의 자동으로 네덜란드 편에 서게 한 것이다.
아무리 신통력이 있다고 한들 설마 100%까지 적중할수 있으랴 싶은 요행수가 생각 한 편에 있었다. 막판에 펠레까지 스페인 손을 들어줘서 혹시나 하는 마음이 커진 것도 사실이다.

인간의 심리라는 게 참 묘한 거 같다.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보다 소수가 선택하는 길이 더 특별하고 그럴 듯 해 보인다. 그래서 더 관심을 갖게 된다. 특별히 요즘처럼 ‘유별난 개성’을 주문하는 세태에서는 더욱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우승후보로 공감하는 스웨덴을 제치고 네덜란드를 선택한 내게도 비슷한 심리가 작용한 것 같다. 게다가 만물의 영장인 인간으로서 미물인 문어에 따를 수 없다는 치기어린 반발심이 무조건 문어의 반대편에 서게 만든 측면도 있다.

결과는 문어의 완벽한 승리였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잘난 척하고 폼 잡던 인간의 허상이 문어의 신통력 앞에 여지없이 무너진 것이다.
인간이라는 기득권만 믿고 모든 것을 면죄 받으려했던 얄팍함을 들킨 것 같아 머쓱했다.
각국의 수많은 스타플레이어와 아트사커, 오렌지군단, 전차군단, 삼바축구 등 대표단의 이름만큼 멋진 축구실력에도 불구하고 고지를 눈앞에 둔 레이스에서 하나 둘 떨어져 나가는 모습을 통해서도 인간의 한계를 볼 수 있었다. 실수와 오판을 반복하는 그 불완전성만으로도 인간이 얼마나 많은 한계에 노출돼 있는지 그 실상을 깨닫게 됐다. 그 무엇도 스스로에 대해 장담할 수 없는 참으로 나약한 존재의 실체 그대로였다.
그런 점에서 여덟 개의 골로 월드컵을 제패한 스페인의 우승은 기적에 가깝다. 조화와 화합(스페인의 민족 간 내분으로 인한 지역갈등은 우리 못지 않다)을 기치로 갈등 봉합에 최선을 다한 감독의 안목과 팀의 성실성이 기여한 바 크겠지만 행운도 크게 따른 것 같다.

어찌 보면 화려함도 막강함도 정교함도 그 나름의 의미와 가치는 있으나 그것들이 축구의 모든 것을 다 설명해줄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가르쳐주는 월드컵이 아니었나 싶다. (개인적으로도 인간이 미물보다 미욱한 존재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월드컵을 통해 축구 경기만 즐긴 건 아니다. 예측할 수 없는 승패의 엇갈림에서 미래를 준비 하되 항상 완벽할 수 없다는 겸손함을 잃지 않고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면 어느 덧 정상에 오르게 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를 보고 배울 수 있었다.
이제 남아공 월드컵은 아쉬움을 남기며 세계 역사의 뒤편으로 넘어갔다.
월드컵을 통해 깨달은 진리를 가슴에 새기며 4년 후의 설레임을 다시 기약해본다.
그 때 쯤이면 대한민국 대표팀도 스페인처럼 화려하게 개선가를 울리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2010.7.13)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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