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 2일 금요일

홍문종 생각 - 아, 박용하

아, 박용하



슬픔이 그대의 삶으로 밀려와

마음을 흔들고

소중한 것들을 쓸어가 버릴 때면

그대 가슴에 대고 다만 말하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

- 렌터 윌슨 스미스 -





탤런트 박용하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이 우기의 음습함을 더해주고 있다.
억장 무너지는 소리를 뒤로 한 채 또 한 젊음이 그렇게 사라져갔다.

영정 속 미소가 너무 환해서 보내야 하는 이들의 아픔을 자꾸만 키우고 있다.

무엇이 이 아름다운 청년으로 하여금 스스로의 삶을 거두어들이게 했을까?

남들은 평생에 한번 만나기 힘든 성공을 거둔 삶을 두고 도대체 왜 죽고 싶었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유서를 남기지 않았기에 명확한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이런 저런 정황을 미루어 짐작해 봐도 그저 나무라고 싶은 마음만 앞선다.

그보다 더한 상황에서도 열심히 꿋꿋하게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조금만 더 참아보지.



평소 나는 젊은이들의 감각을 이해하고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다.

그런 만큼 그들의 문화를 바라보는 시각도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신에게 닥치는 생의 문제에 너무 쉽게 굴복하는 경향을 보이는 그들의 한계에 우려한다.

학업, 직장, 병역 그리고 대인관계 등 평범한 일상으로 끝날 수도 있는 상황이, 순간의 차이로 무게를 달리할 경우 도저히 감당이 안되는 ‘쓰나미’가 되는 게 문제다. 참을 수 없는 나약함이라고나 할까, 도무지 인내하려 들지 않는다. 젊은 그들에게 있어 치명적 약점이 아닐 수 없다.

자살도 마찬가지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만 결국 지레 겁먹고 항복하는 형국 아니겠는가.

정말로 죽고 싶을 만큼의 고통이지만 어차피 지나가게 돼 있다. 그것이 인생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기만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건 인간의 숙명일지 모른다.

다만 그 아픔을 얼마나 잘 다독일 수 있느냐에 따라 행복의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다.

자살공화국의 불명예가 아니더라도 자살은 최악의 선택이라는 측면에서 용납될 수 없다. 오히려 인생의 무게를 감내하지 못한 나약함은 마땅히 질타를 받아야 한다.

안타깝긴 하지만 박용하의 죽음도 더 이상 미화되어서는 안 된다.

그가 우리에게 남긴 고통이나 슬픔의 문제가 아니라 그의 부재가 특별히 다른 이들에게 미칠 영향이 걱정스럽기 때문이다.

실제로 박용하의 비보가 전해지자 그 실체를 드러낸 이른 바 ‘베르테르 효과’의 현장을 보고 있다.

박용하가 숨진 지 하루 만에 레이지본 멤버인 노진우가 한강에 투신했다 구명됐는가 하면 우울증을 앓던 40대 주부가 관련 보도를 본 뒤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시인 도종환은 말했다.

희망의 바깥은 없다고.

새로운 것은 언제나 낡은 것들 속에서 싹트는 거라고.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냐고.

바람에 흔들리고 비에 젖으면서 따뜻한 꽃잎으로 피어나는 거라고.

나는 이 블로그를 통해 말하고 싶다.

역경을 이겨내지 못한 삶은 그 열매에 향기가 없다고.

자신의 생에 대해 좀 더 진지해지고 열정을 갖자고.

어차피 오게 돼 있는 어려움, 피하려고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자고.

무엇보다 그 어떤 난관도 우리의 삶을 좌초시킬 수 없다는 분명한 사실을 기억하자고.



내게도 죽음을 떠올릴 만큼 힘들던 좌절과 역경의 젊은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죽음에의 유혹을 딛고 그 지난한 시절을 이겨냈기에 오늘 날 내 나름대로의 성공과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더 이상 극단의 선택은 없었으면 좋겠다.

고인의 명복을빈다.
(2010. 7. 3)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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