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 28일 수요일

홍문종생각 - 황제, 아무나 되나?

황제, 아무나 되나?



용산 쪽방촌에서 6300원(현재의 최저생계비를 기준으로 책정된 금액)으로 1박 2일의 생계를 해결하는 체험릴레이가 화제다.

오는 9월 1일 최저 생계비 책정을 앞두고 수급자들의 절박한 현실을 역지사지하기를 바라는 취지에서 참여연대가 주관하고 있는 행사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행사에 참여했다가 곤욕을 치르는 여당의원이 있다. 한나라당 차명진 의원이다.

그는 6300원의 생계비를 요령껏 운영해서 1박 2일을 황제처럼 지낼 수 있었다는 요지의 체험후기로(그것도 보도자료까지 동원해서 홍보했다)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다가 구설을 자초했다. 의식주 해결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인간의 삶임에도 불구하고 먹는 문제의 일시적인 해소가 전체 삶의 해결책이라도 되는 양 호들갑을 떤 경솔함이 화근이었다.

뒤늦게 사과문을 올리는 등 수습에 나서는 모양이지만 그가 입게 될 정치적인 타격은 불가피할 것 같아 안타깝다.



차 의원 해프닝은 최저생계비의 본질을 제대로 알지 못한 탓이 크다고 본다.

평소 직접 장보기를 한 경험이 전무한 나 역시 생계비에 대한 감각이 다른 사람보다 나을 리 없음을 고백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300원’이 1박 2일의 생계를 해결하는 비용으로는 터무니없이 부족한 금액이라는 건 알 수 있을 것 같다.

빈부 격차로 인한 사회적 갈등 구조는 자본주의 국가들이 안고 있는 근원적인 문제점이다. 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최저생계비의 문제는 얼마냐의 문제가 아니라 부족한 최저생계비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결국은 받아들이는 입장차이의 문제인 것이다.

그것은 배가 고프다는 민중을 향해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라던 철없는 발언으로 급기야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는 불운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던 마리 앙뜨와네트의 자기본위적인 인식과 닮아있다.

똑 같은 삶이라고 해도 선택의 여지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과의 차이는 극과 극이다.

무엇보다도 정책을 결정하고 실행하는 주체가 되는 사람들의 배려없는 여유로움은 때로 삶의 극단에 몰린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독성이 되기도 한다. 없는 사람들의 고통에 둔감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최저생계비가 통계수치만으로 결정되기보다 관련자들로 하여금 단 하루라도 쪽방체험을 의무적으로 참여도록 하면 어떨까 싶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직접 체험이 기초생활 수급자들의 절박한 애환을 조금이라도 역지사지 할 수 있도록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대부분의 가진 사람들 눈에 비치는 가난은 ‘게으르고’ ‘무책임하고’ 국가 경쟁력을 갉아먹는 무능이다. 그런 대상을 배려나 이해로 감쌀 리 만무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 잘못된 편견이다.

대기업이 수많은 중소기업이나 노동자 없이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부자의 안락한 삶 역시 다른 이들의 조력 없이 보장되지 않는 현실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경주 최부자 댁이 200여년 동안이나 존경받는 부자 가문으로 유명세를 떨칠 수 있었던 것은 10대를 이어오며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배려와 관심으로 부의 철학을 실천한 덕분이다. 그것은 어쩌면 더불어 살 수 밖에 없는 우리 삶의 원형을 이해한 지혜로운 처신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잇단 설화가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요즈음이다.

요는 가진 자의 교만과 방심의 문제다.

좀 더 겸허한 마음으로 자신을 성찰한다면 최소한 낯부끄러운 소동의 주인공으로 등극하는 불운은 막을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다.



황제. 그거 아무나 될 수 있는 거 아니다.

덥다.
(2010. 7 .29)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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