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20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 엄이도종(掩耳盜鐘)

엄이도종(掩耳盜鐘)

어렸을 때 ‘김일성’은 절대 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고인이 됐고 이제 그의 뒤를 이은 아들 ‘김정일’의 돌연사가 지구촌을 달구고 있다.
허를 찔린 기분으로 '김정일' 사망소식을 접했다.
죽음 앞에서 왜소한 실체를 드러낸 본연의 모습이 주는 순간적인 당혹감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건강에 문제가 있었다고 하지만 70도 못 넘기고 이렇게 일찍 삶을 마감할 줄은 몰랐다.
저녁 자리에서도 당연히 김정일 사망이 중심 화두가 됐다.
그의 사후 펼쳐질 한반도의 대 격랑, 통일한국의 미래, 김정일 사망을 둘러싼 음모 설, 김정은, 김정남 등 형제들의 갈등 기류 등 예상 가능한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결국은 죽게 돼 있는 삶의 한계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애써 죽음을 인식하지 않으려 담담한 눈빛을 위장하는 허세도 의외로 많이 만나게 된다.
하루를 살면 하루만큼, 이틀을 살면 이틀만큼 가까워지는 죽음의 종착역, 그것이 인생인데 우매한 인간은 마치 천년만년 살 것처럼 한치 앞도 못 내다 보고 탐욕을 부린다.
어찌 보면 인간의 서글픈 숙명일지도 모른다.
누구나 주어진 삶의 시간을 다 소진하면 종착지에 도달하게 돼 있으니 죽음만큼 공평한 게 없는 것 같다.
왕후장상의 삶이나 촌부의 무지렁이 삶이나 예외 없이 죽음과 마주하는 현실은 우리가 일상으로 목도하는 결론이다.

얼마 전 호암 이병철 회장이 타계 한 달 전, 정의채 신부에게 종교와 관련해 ‘24개 항목의 질의’를 던진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됐다. 정작 질문을 던진 당사자는 듣지 못한 답변이 36년이 지난 지금 한권의 책으로 나오게 됐다는 언론 보도를 통해서다. 당시 고인이 소폐암 폐암 투병 막바지였던 정황을 감안해 볼 때 그의 의문은 ‘신의 존재에 대한 깊은 천착’에서 비롯됐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그것은 죽음을 목전에 둔 인간이 품었음직한 사후 세계에 대한 두려움의 표출이기도 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재벌 총수조차도 죽음 앞에서는 범부의 수준을 뛰어넘지 못했던 것이다.
정말 죽음 앞에선 누구도 특별하지 않다.

일행과 함께 하던 스님 한 분이 무심히 던진 말이 화두가 됐다.
인간이 자신의 죽는 시점을 정확히 알 수 있다면 삶의 마무리를 조금은 다르게, 더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을 거라는 말씀이었는데 사람들 가슴에 깊은 울림을 남긴 것이다.
포악한 독재자, 실패한 전제군주의 이미지 때문인지 김정일의 죽음이 섭섭하거나 애잔한 정서로 다가오지 않는다. 다만 그가 자신의 죽음을 얼마나 예견하고 있었는지, 살아생전 스스로가 어떤 인간인가에 대해 충분히 성찰했는지, 자신의 행위에 따른 시시비비를 가려본 적이 있는지, 무엇보다도 정작 본인은 역사와 민족 앞에서 성군으로 착각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는지, 또 그럴 자신감은 있었는지 그런 것들이 궁금할 뿐이다.

김정일 자신은 절대권력을 행사하면서 화려한 삶을 살았지만, 참담한 생활에 시달리는 북한 주민 실태는 이미 널리 알려진 바대로다. 아사한 북한 주민 수가 3,4백만 명에 이르고 정치범 수용소에서 재판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죽을 날만 기다리는 주민들이 넘친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문득 궁금해진다. 김정일이 이토록 허망하게 세상 무대에서 사라질 자신의 운명을 미리 알았다면 북한사회는 지금과 많이 다른 모습이었을까?
그가 조국에 대한 뜨거운 마음으로 현실을 안타까워했던 지도자는 아니었던 것 같다. 벤츠나 양주, 그리고 기쁨조에 미쳐 권력 유지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던 극단적 패륜아로 보이지만 결국 역사가 기록해야 할 텐데 정확성을 담보할 수 없는 현실이 더 없이 아쉽다.

어느 정권이나 소통 부재가 문제시 되는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교수신문이 집어낸 올해의 사자성어, 엄이도종'(掩耳盜鐘ㆍ귀를 막고 종을 훔친다)은 참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불통의 불합리함을 개선하려는 의지 없이 따로국밥으로 가고 있는 정권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지적했다. 작년 사자성어는 장두노미'(藏頭露尾)였다. 경고해도 개선점을 보이지 않는 정부의 불통에 올해엔 더 강력한 메시지로 질타를 가한 셈이다.
그나저나 내년 이맘때에는 좀 더 긍정적이고 모두에게 행복감을 안겨주는 사자성어가 선정되었으면 좋겠다.

PS: 김정일 조문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나 본데 개인적으로는 조문에 신중한 찬성표를 던진다. 대대적이거나 공식적인 방법이 아니라도 조문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지 않겠는가. 누가 됐건 어떤 상황에서라도 망자는 망자이다.

(2011.12.20.)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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