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11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임기를 보장하자

임기를 보장하자


2002 한일 월드컵 이후 대한민국은 축구 역사를 새롭게 쓰기 시작했다.
온 국민이 축구 전문가고 축구 감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축구에 대한 관심과 식견이 높아졌다.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룬 자부심이 일으킨 변화다.
단 축구팬이 많아진 만큼 ‘시어머니 참견’을 감수해야 하는 부담도 늘어났다.
축구에 관한한 사회적 합의를 도외시한 결정은 반드시 뒤탈이 이어진 기억이 있다.
실제로 후유증에 시달린 사례가 적지 않다.

조광래 국가대표 감독 경질을 두고 며칠 째 시끄러운 것도 축구에 대한 우리사회의 특수성(?)이 반영된 결과라 할 것이다. 그의 경질 소식이 전해지자 대중은 일단 ‘이상한 해고’로 규정짓고 의혹을 쏟아내는 분위기다. 협회 측이 설명한 해고 과정이 석연치 않은 게 가장 큰 이유다.
나 역시도 평소 조 감독의 역량에 만족했던 입장이 아니었던 만큼 무척대고 조감독 사임에 반대할 의사가 없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조 감독 경질 절차에 아쉬움이 많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명색이 현직 국가대표 감독 신상에 관한 일인데 최소한 국민 공감을 구하는 절차부터 챙겼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사안의 옳고 그른 판단에 앞서 국가대표 감독에 걸 맞는 예우를 갖춰 당사자는 물론 국민적 동의를 구하는 절차가 진행됐다면 분명 그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다.
협회 측의 서투른 처신이 화를 자초한 셈이다.

선진 사회일수록 구성원들에 대한 충격요법은 자제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다.
사회가 발전될수록 물리적인 폭력보다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 설득이 더 큰 힘을 발휘한다고 믿고 있다.
그런 점에서 임기 보장이야말로 신뢰 사회를 구축할 수 있는 가장 기본 요소라는 생각이다.
기본적으로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리더의 철학이 반영된 정책이 꾸준히 추진될 수 있어야 나름의 개성이 가미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일정한 과정을 거치지않고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어느 날 갑자기 공정사회가 완성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에게 일정한 임기를 주고 특별한 탄핵사유가 아니면 그 임기를 보장하는 것도 같은 이유가 아닐까 싶다.

임기 보장 필요는 축구계라고 다르지 않다.
선진 축구를 원한다면 이번 기회에 축구 감독도 임기를 보장해주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정치권처럼 탄핵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한 축구 감독도 장기적인 전략으로 팀을 운영할 수 있도록 운신의 폭을 넓혀야 한다. 물론 감독의 독선을 제한할 수 있는 탄핵 제도를 도입하되, 민주적인 절차를 보장할 수 있는 재심요구나 선수 인터뷰의 기능 등을 강화시키는 것도 합리적인 축구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절차라 하겠다.
예전 차범근 감독의 경질 과정도 지금 생각해보면 문제가 많았다는 생각이다.
차 감독 개인은 물론, 한국 축구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결정이 아니었다는데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을 터다. 그 때 차 감독 경질을 주관했던 구성원들이 현재 축구 협회 임원들이다. 차 감독 때도 역지사지하는 세심함을 보여주지 못했던 그들이 이번 조감독 때도 비슷한 처신으로 화를 자초하고 있다는 불신을 지울 수 없다.
기술위원회 등 축구의 강화를 위해 존재하는 기구들이 지금처럼 경직된 마인드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우리의 축구 미래는 없다. 축구가 국민으로부터 외면받는 신세로 전락하는 건 시간문제라는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끝내 개선되지 못하면 스스로를 경질하는 사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FTA가 통과되던 날, 미국, 일본 등지에 있는 외국인 친구들로부터 한국 국회에 무슨 큰일이 있느냐는 전화를 받으면서 더 이상 우리만의 대한민국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지구 건너편에 있는 사람들이 다 들여다보고 있었다. 세상이 바뀐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우리의 처신이 좀 더 신중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세계 리더를 꿈꾸고 있는 만큼 정치도 스포츠도 그에 걸 맞는 반듯하고 세련된 솜씨로 운용할 수 있는 품격있는 대한민국 국민이 되도록 하자.

(2011. 12.11)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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