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13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 거인을 기리며


거인을 기리며



철강왕,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별세소식에 대한민국 전역이 애도의 물결로 출렁인다.
아까운 분이 돌아가셨다며 거인과의 작별을 아쉬워하는 분위기다.
그와는 국회에서 함께 활동한 인연이 있다. 특별한 교분을 나누지는 않았지만 깡마르고 어눌한 느낌에도 불구하고 철에 대한 애정이 대단했던 기억만큼은 선명하다. 특히 포철에 관한 얘기를 자주하셨는데 그 때마다 뜨거운 열정을 온 몸으로 뿜어내곤 했다.
기업인으로서의 그의 삶은 완벽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정말 잘 살았다. 포항제철 건립으로 철강 볼모지였던 우리나라를 세계 최강의 철강 산업국으로 끌어올린 공로 하나만으로도 평가받을 만한 인생을 살았으니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는 국내는 물론 세계가 존경하고 탐내는 철강인이었다. 흉막 섬유종도 모래바람을 일으키는 현장에서 진두지휘하다 얻은 병이다. 80% 공정이 끝난 구조물을 기준미달이라고 폭파해 포철에 부실공사를 근절시킨 일화가 신화처럼 남아있는데 하바드 비지니스 스쿨의 교재로까지 채택될 정도로 탁월한 리더십이었다. 일찍이 철강의 노벨상 격인 베세머 금상이나 윌리코프 상의 주인공으로 등극한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니리라.

그러나 그의 인생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그의 말년에 족쇄가 되어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입증한 정치 인생 때문이다.
정치는 그를 4선의 국회의원과 총리까지 만들어 줬지만 그의 찬란한 철강인생을 모욕하고 폄훼해서 나락으로 밀어낸 것 역시 정치였다. 정치 인생만 따로 생각한다면 그는 행복이나 성공과는 거리가 먼 인생을 산 셈이다.
그런 선례들을 너무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일까?
근래 들어 아들의 정치 인생 때문에 아버지의 시름이 부쩍 깊어지신 기색이다.
제일 적극적으로 내 인생을 정치로 이끄셨으면서도 내 정치적 안위에 우려를 표명하시는 아버지의 의중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아버지는 비정하다 못해 비열하기까지 한 정치풍토가 마음에 걸리시는 것이다.
정치의 속성이 그렇다.
남을 딛고 올라서야 자기 영역 확보가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어지간한 맷집으로는 상대를 헐뜯고 비방하는 건 기본이고 정치적 살인까지 서슴지 않는 정적들 사이에서 생존하기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또 떠나야 할 때 미련 없이 그만 두지 못하는 일종의 증독 증세도 정치를 어렵게 하는 독소다.
용퇴에 대한 결단만 제대로 해도 별 문제가 없을 텐데 정치를 그만 둘 시점을 찾지 못해 패가망신에 이른 선배 정치인이 한 둘이 아니다. 정치가 아니었다면 충분히 행복할 수 있었을 인생을 정치에 바치고 비참한 노후로 보내고 있는 경우도 주위에 흔하다.

두렵다고 정치를 삶의 로드맵으로부터 떼어낼 수는 없는 일이다.
기피하고 외면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소신있고 합리적인 정치가 가능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게 현명한 대처방식이다.
우선은 정치인에게 제대로 된 연금시스템을 제공하는 등 복지후생에 대한 관심을 둘 필요가 있다. 좀 더 폭 넓고 자유로운 접근이 가능한 정치자금법 운영을 위한 현실적인 방안도 정치를 좀 더 순리적으로 풀어낼 열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 의회의 경우, 의원 임기가 끝나면 연금을 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의회 시설을 이용하는 데 있어 현직과 차별을 두지 않는 배려가 돋보인다. 그런 자긍심에 대한 디테일한 배려들이 정치인으로 하여금 뇌물이나 정치자금으로부터 자유롭도록 만드는 원동력이 아닐까 싶다. 또 지나치게 엄격한 규제로 인한 강박감이 돈의 유혹을 더 느끼게 하는 역효과의 고리로 작용하는지도 모른다.

정치수준을 높이려면 무엇보다 우리의 정치 후진성을 부채질하는 심각한 정치보복 현실의 개선이 시급하다. 성공한 정치인을 배출해내지 못하는 원인도 크다할 것이다.
왕조시대 승자가 패자의 삼대를 멸하고 그 식솔들을 노비로 만들어 취하던 조악하고 야만적인 형태의 정치 보복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식의 패악을 21세기 대한민국 정치현실에서 만나게 되는 건 너무나 부끄러운 불행이 아닐 수 없다.
고인과 YS와의 악연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YS는 자신에게 등을 돌린 고인을 철저히 응징했다. 대통령의 권력으로 전 세계가 인정하던 철강인생을 순식간에 날려버리는 몽니를 부렸다. 졸지에 그는 뇌물을 수뢰한 파렴치범이 되어 4년여의 적지 않은 세월 동안 해외에서 부랑자처럼 떠돌며 살아야 했다. 나 역시 같은 고통을 당한 경험이 있기에 그 당시 고인이 느꼈을 외로움을 비롯한 그 복잡다단한 심정을 짐작할 수 있다.
다시는 이 땅에 비정한 정치 보복이 되풀이 되지 않으려면 제도적 장치를 만들기 위한 노력들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우리 곁을 떠나간 거인을 기리며 큰 절 올리는 심정으로 이 글을 맺는다.
부디 영면하소서.

(2011. 12 .13)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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