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월 15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낀 세대

 
낀 세대
스승의 날은 교육자의 길을 걷고 있는 내게 남다른 감회를 선사한다.
제자들의 방문을 받고 은사님을 찾아뵈면서 스승인 동시에 제자가 되어 추억 속에 흠뻑 빠져드는 호사가 허락되는 날이기도 하다. 이날만큼은 모두가 40년 세월의 간극을 훌쩍 뛰어넘는다. 지금의 우리보다 더 젊은 선생님들과 까까머리 중학생인 우리들이 한데 어우러져 추억의 공간을 채우는 꿈같은 시간이다.
안타까움이 있다면 흐르는 세월을 어쩌지 못해 유명을 달리하시는 은사님이 늘고 있는 현실이다. 십수년 전, 스승의 날을 맞아 은사님들을 처음 모실 때만 해도 제법 잔치 분위기가 나는 규모였는데 갈수록 단촐해지는 느낌이다.
한 분 두 분 그리운 얼굴들이 생과 사의 인연을  달리하며  우리 곁을 떠나시기 때문이다. 
올해만 해도 매년 모셔오던 이동범 교장선생님의 빈자리를 지켜봐야 하는 슬픔이 있었다.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그런 이유로 올 스승의 날은 더 없이 쓸쓸하게  보내야 했다.  
김기열 선생님이 선약 때문에 불참하시니 조성복, 장신재 두 분 선생님만 모시는 자리가 되고 말았다.
그나마 두 분 은사님들이  아직은 건강하고 의욕적인 모습이셔서 위안이 되긴 했지만.
특히 중3때 담임을 맡으셨던 장신재 선생님(언젠가 김한길 전 의원이 잊지 못할 스승으로 지목하던 분이다)은 칠순의 연세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강단 있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백수에 돌아가신 당신 은사님 경우를 들어 50대인 우리들은 아직 아이(?)에 불과하니 지금부터 새로운 삶을 준비해도 늦지 않았다고  격려하셨다.
무엇보다 예전부터 나의 가능성을 확신하고 계셨다며 무한 신뢰와 사랑의  덕담을 아끼지 않으셨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더니 오래 동안 익혀온  묵은 꿈이   '결실'로 실현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단숨에  파죽지세의 기세를 충전해준  축복이었다.
 
君師父 一體라며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던 때도  있었다.
그 시절을 비교하면 지금은 스승의  위상이  말이 아닌 상황이라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삭막하고 힘겨운 일상에서 차지하고 있는 스승의 역할은 여전히 지대하다. 
어떤 인연이냐가  한 사람의 인생에  중요한 결정이 되는 점도 별반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
위대한 인물 뒤에는 반드시 그보다 더 위대한 스승이  인격적 감화와 사상적 영향을 미치는 과정이 있었다.    
플라톤에게 소크라테스, 아난에게 석가, 안연에게 공자, 안연에게 퇴계선생이 스승으로 존재한 인연도 우연이 아닌 것이다.   

이번 기회에   자신의  현재를  위해  헌신하신 스승의 존재를  되돌아보는 건 어떨까 싶다. 
감사한 마음으로 은사님을 찾아뵙고   또 다른 가르침을 받을 수만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
누군가 나를 가르치고 이끄는 존재가 곁에 있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이라는 사실을 알 게 될 것이다.  
다만  좋은 스승과 제자 관계에   빠져서는 안될 덕목이 있는데  그것은 신뢰다.
스승이  제자를  잘 알고 있고  제자는 스승을 인격적, 도덕적으로 신뢰할 수 있다면  그 외의  일은  아무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제 관계 속에서 다  자동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  
그만큼 스승의 존재는   '슈퍼 울트라 짱'이다. 

오랫만에 만나는 제자들을 통해서도 새삼  깨닫는 바가 적지 않다.
그들의 얼굴을 점령해가고 있는 주름살을 보면서 세월의  변화를  실감하고 있지만   세월이   바꿀 수 있는 건 외형 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가끔씩  '아 , 원래 얘가  이런 사람이었나' 싶을 만큼  '완전한 변신'으로  놀라게 하는  제자를 만나기는  하지만  그것은 아주 예외적인 케이스에 불과하다.    
어느 형태든  '그 녀석'의 현재와 과거가 상호  연관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본다. 
학교 다닐 때의 품성이 지금까지 남아있는 걸 보면서  숱한 세월도  인간의 기본적 품성이나 성향을 어쩌지 못하는 강력한 자연의 법칙을 실감하게 된다.   
어찌보면 참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것들이 인연을 이어주는 매개가 되고 있으니 말이다.


스승의 날,
구구절절 옳으신 선생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건  특별한 행복이다.  
또 감사할 일이다. 특별히 나처럼 스승이기도 하고 제자이기도 한 낀 세대 입장에서는  더욱 그런 것 같다.  
지금 이 순간  이 낀 세대의 바람을 피력하자면
1.  말씀 잘 받들어서  선생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훌륭한 제자가 되고 싶다는 것
2. 내 제자들에게도   그  가르침 대로 용기와 희망을 주는 선생이 되고 싶다는 것.      
3. 사랑을 전하는 제자이고 스승이 되고 싶다는 것.
                                               (2011.5.15)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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