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월 5일 목요일

홍문종 생각 - 어린이

어린이
 
89번째 맞는 어린이 날이다.
지금은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되긴 했지만 그야말로 어린이를 위한 날이다.
어린이날이 제정될 때만 해도 1년 365일 내내 어른, 특히 아버지를 위한 날들만 있었지, 아이들에 대한 배려는 꿈도 꾸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그런 척박한 환경 속에서 특별히 아이들을 ‘어린이’라는 고운 이름으로 불러주고 하루만이라도 그들을 위하자는 마음 씀으로 만들어진 날이니 만큼 의미가 크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불과 100년이 채 안 되는 과거만 해도 ‘아이들의 인권’은 존재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신경 쓸 겨를이 없었고 또 그것이 상식으로 통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돼 있었던 게 사실이다. 모든 가정의 라이프 사이클이 아이들 위주로 돌아가고 아이들이 어른의 상전으로 군림해 있는 요즘으로선 도저히 상상이 안가는 풍경일 것이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많이 변했다. 어린이 인권이 과포화 상태에 이르렀다는 걱정이 나올 정도다.
 
그렇다면 우리의 아이들은 많이 행복해졌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절대 아니다.
우리나라 어린이들이 행복하지 않다는 객관적 데이터도 나와 있는 마당이다.
실제로 한국방정환재단과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염유식 교수 연구팀이 어린이날을 맞아 설문을 조사한 결과 우리 어린이와 청소년의 행복지수가 23개 OECD 회원국 중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이들의 바쁜 일과가 걱정되긴 했어도 솔직히 이 정도까지 인줄은 몰랐다.
그러면서도 이 충격적인 결과에서 생산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 있음을 강조하고 싶다.
우리의 삶에서 필요한 것은 무엇이고 지향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  방향을 제시하는 계기가 됐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돌아보면 많이 반성되는 것도 사실이다.
아이들을 바쁜 스케줄로 묶어 점수 따는 기계로 만들어 놓은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은 우리다.  아이들에 대한 인권은  신장됐는지 몰라도 그들을 진정성 있게 수용하는데 있어서는 크게 부족했음을 자책한다.
가족은 물론 친구와 대화할 시간도 변변치 않은 환경을 만들어 놓고  아이들에게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바란다는 건 가당치 않다는 생각이다. 그들에게 계절의 변화와 꽃의 아름다움, 인간미 있는  생을 기대한다는 건 맹수에게 한글을 깨우치려는 시도만큼이나 무모하지 않을까 싶다.
 
어차피 인간의 삶 자체에 정확한 답이 없다.
세상에 던져진 피투자의 숙명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 영어나 수학 점수가 얼마나 그 의미를 더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세대를 짊어져야 할 미래를 잘 키워내는 어른들의 책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균형감이 빠진 책임감은 부작용 측면에서 달갑지 않다.
소통과 신뢰, 존중 등도 아이들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코드임에 틀림없지만 스스로의 의지를 배제한다면 별 의미가 없다고 본다. 비록 좌절하더라도 인생의 쓴 경험을 통해 더 큰 기쁨의 기회를 갖게 하는 것이 인간다운 삶을 위한 기초 체력을 다지게 해주는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의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고 지향해야 할 점에 대한 고민부터 시작하는 것이 옳다.  여러 가지 생각들이 한꺼번에 쏟아지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에게 자유를 허용하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스스로의 의지로 자기 인생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것이야말로 그들에 대한 최대의 배려라는 판단이다. 
생후 1년도 채 안된 딸을 데리고 찾아온 제자를 만나면서도 같은 생각을 했다.
아기의 초롱한 눈망울을 바라보니 이 천진난만한 아이도 조만간 시험과 점수로 계량되는 치열한 경쟁구덩이를 피할 수 없을 거라는 데 생각이 미치자 많이 부끄럽고 미안하고 안타까웠다.
어른 역할은 물론 책무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자책이 쥐구멍을 찾게 했다. 
 
수도권에 소재한 학교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의 딱한 처지를 자주 접하게 된다.
그런 그들을 위해  온전히 해 줄 수 있는 일이  기도 밖에 없다는 사실 앞에서 가끔씩 현실적인 한계를 절감하게 된다. 
비록 어른들이 잘못 만들어 놓은 틀 속에 놓이게 됐다 하더라도 절망하지 말고 포기하지도 말고 스스로의 길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의지를 잃게 되지 않기를 기도한다.  스카이대학에 못가도 좋고 모든 사람이 선망하는 직장에 취직이 안된다하더라도 인간다운 삶을 주관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간구한다.
나를 포함한  이 땅의 많은 어른들이 이제 막 피어나는 꽃망울들이 힘 있는 출발을 할 수 있도록 뒷받침 할 수 있는 역량을 갖게 해달라는 기도도  함께 보탠다. 
어린 그들이 희망을 잃지 않는 삶을 영위하기를,   무엇보다 그 희망을 구축하는데 기여할 수 있는 어른일 수 있기를 간구한다.
                                                          (2011,   5,  5)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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