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월 15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비 내린 뒤

비 내린  뒤
 
며칠을 오락가락 하던 빗줄기가 사라지니 비로소 봄이 열리는 기분이다.
앞산도 한층 말개진 얼굴을 드러내며 싱그러운 활력을 뿜어내고 있다.
정갈하게 정화된 무언의 기운이 산의 위용을 더하고,  폐부를 꿰뚫는  청량함은   움추러든 마음을 터주고  있다.  
마치  신통술이라도 부리는  느낌이다.
이 모든 게 천둥 번개 등 산고 같은 순간들을 감내한 대가로 며칠간의 우기가 주고 간 선물이지 싶다.

비 내린  뒤의 풍경에서 우리 인생의 희로애락을 본다.
특히 역경을 극복하고 얻은 성취는 그 드라마틱한 과정으로 인해 더 큰 가치를 인정받게 되는 것 같다.
고진감래의 달콤함이랄까, 이리 저리 휘둘리고 움푹 질푹 깎이는 고통과 시련 끝에 얻는 인간승리는 절대로 우연히 접할 수 있는 부산물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렇게 되기까지 불굴의 의지가 차지하는 비중도 적지 않다.  희생을 감내하는 어려움을 두려워한다면 아무것도 될 수 없음이다.
숙성을 위한 투자 없이는  삶의 환희를 체험할 수 없고 그것은 인생의 진리이기도 하다.
삶의 과정에서  빚어지는 실수도 그 일환이라 하겠다. 
옛부터 '실수는 병가지상사'라는 말로  실수한 사람에 대한 관대함을 보여줬던 것도  나름  이유가 있다.    
실제로  한 때의 실패가  삶의 반전을 이끄는 동력이 되는 경우는 허다하다.  
성웅 이순신 장군만 해도 그렇다. 백의종군이 생략된   장군의 삶은 미완성의 그림을 보는  미진함을 남긴다. 
백의종군으로라도 나라를 위해 싸우겠다는 의지를 포기했다면 거북선 제작은  실현되지 않았을 것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도 마찬가지다.  유배지의 여유로움이 아니었다면 다산의 실천적 정치사상의 정수로 꼽히는 ‘목민심서’ 역시 세상 빛을 볼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귀양살이의 불운한 공간을 명저의 산실로 바꿀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났던 실력이 뒷받침되긴 했지만 말이다.
또 7전8기의 뚝심이 없었다면  홍수환 선수는 세계 챔피언 권좌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라고 외치던 그의 감격이 불굴의 의지를 대변하는 신화가 되어 인구에 회자될 리 만무다.
 
며칠 전, 부처님 오신 날 봉축식장에서  한 스님과의 만남이 뇌리를 스친다. 
나를  인정해주는  감동  때문인지  명료한 기억으로 저장돼 있는 만남이다. 
그는 나보다 나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당신 스스로는 지금까지 자신이 겪어왔던 고난의 시간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얼굴의 주름과 희끗해진 머리카락, 그리고 약간은 더 맑아진 눈빛에서 큰 에너지가 느껴진다. 과거 당신이 승승장구하던 때보다 훨씬 더 더 신뢰가 가고 개인적인 정도 더 해지는 것 같다”며 용기를 주셨다.
처음에는 단순히 ‘덕담을 하시는구나’ 하는 정도였는데  지금 이 순간   또 다른 울림으로 삶의 성찰을 이끄는 길잡이가  되고 있다.    지금의 나를 이렇게 칭찬할 정도면 과거의 내 모습은 얼마나 가관이었을까 싶은  자극 때문이다.  

그렇게 야기된 깨달음과 반성이  나의 차원을 높여주는 계기가 되고 있다.  
앞으로 더 낮은 곳을  향하는  겸손함으로   삶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도록   스스로를 잘 닦겠다고 다짐해본다.  지난  실수를 통해 더 웅대한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고  더 단단해진  내공을 토대로  강단있는 인생을 꾸려나가겠다는 의지도  함께 다진다.  조개가 스스로의 살점을 뜯어내는 아픔없이는 색영롱한 진주를 품을 수 없는 세상이치를 다시 한 번  새기면서 말이다. 
그런 각오와 결심을 챙길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2011. 5. 12)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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