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29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시인의 소망으로

시인의 소망으로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 1시를 훌쩍 넘긴 귀가길이다.
차가운 밤공기를 가르며 걸음을 옮기다가 어쭙잖은 철학자가 되어버렸다.
무심코 눈에 들어온 선거 현수막 때문이다.
현수막 자극이 ‘의정부을 선거구’를 뛰고 있는 후보군들을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자문.
‘나 자신 저들에 비해 어떤 점에서 더 낫다고 생각하기에 이 치열한 경쟁구도에 서 있는 것일까?’


선거만큼 적자생존의 법칙이 리얼하게 적용되는 공간이 있을까?
인간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선거야말로 생존 원리의 모범답안이라는 생각이다.
적지 않은 후보군들이 뛰고 있는 이 지역만 해도 결코 만만치 않은 생존경쟁 구도를 보이고 있다.
경선을 거쳐 본선까지 진출하는 과정만 해도 쉽지 않은 경쟁력이 요구되는 만큼 갈수록 분위기가 살벌해지고 있다. 인간이기에 갖춰야 할 최소한의 예의조차 쉽지 않은 형국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처연한 현실에 인간이 맞나 의구심이 들 정도다.
오로지 경쟁에서 살아남아 여의도에 입성하겠다는 일념뿐이니 오죽할까 싶으면서도 서글픔이 없지 않다.


'인간의 본성은 신에 가까울까? 짐승에 가까울까?’
결국 선거만큼 인간의 신성과 수성에 대해 제일 잘 정리된 설득력을 보여주고 있는 경우는 없다는 생각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반인반마의 외형으로 등장하는 켄타우로스처럼, 신도 아니고 짐승도 아니면서 신성과 수성을 양립하는 인간의 특수성이 망설임 없이 발휘되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스스로를 향한 의문에 답을 구하다가 문득 큰 위안을 받는다.
결국 내 행동이 하늘의 뜻에 어긋나지 않도록 살펴야 한다는 조바심으로 살아왔다.
그런 의식적인 노력들이 나 자신을 깨어있도록 자극했고 이성적 판단을 도왔다는 것을 알겠다.


윤동주의 ‘서시’를 입안에 굴려본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기원했던 시인의 순결함이 손에 잡힐 듯하다.
시인의 숭고한 삶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어지러운 정치현실을 정화시키는데 일조하는 정치인이고 싶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대한민국 정치를 실현시키고 싶다.
시인을 닮고 싶은 소망을 가슴에 다지며 그렇게 2월의 마지막을 접는다.


(2012. 2. 29)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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