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11일 수요일

홍문종생각 - 추억의 힘


추억의 힘

  
 


확실히 추억은 힘이 셌다.
저마다 살아온 삶의 공간이 순식간에 동화되도록 만드는 저력이 있었다.
추억 앞에서는 오랜 세월도, 서로 다른 정치적 입장도 아무런 걸림돌이 아니었다.
오늘, 중학교 때 은사님을 모시고 선배인 김한길 의원과 함께 점심을 나눈 자리를 통해 더 깊이 절감한 사실이다.
김한길 의원과는 2년 편차로 같은 은사님을 담임선생님으로 모신 인연이 있다.  
우리들에게 도깨비 선생님으로 더 유명한 장신재 선생님이 그 주인공이신데  오늘 점심도 그 독특한 인연이 작용한 자리였다.    언젠가 김 의원이 지면을 통해 ‘장 선생님을 존경하는 은사님’으로 회고한 사실을 떠올린 내가 왜 한 번 안 모시느냐고 김 의원을 압박(?)해서 엮어낸 것이다.

“아직도 불량 잡지를 애독하고 있나?”
매 해 스승의 날이면 찾아뵙는 나와는 달리, 김 의원과는 실로 오랜만인 선생님은 옛 제자를 만난 반가움을 그런 추억의 언어로 표현하셨다.  이에 질세라 김 의원도 자신의 불량잡지 수난사를 걸쭉하게 펼쳐놓는 것으로 우리 모두를 추억의 공간으로 이동시켰다.  까마득한 까까머리 시절 이야기들이 손에 잡히는 가까움으로 우리들의 해후를 기름지고 풍성하게 가꾸어 주었다.
‘틀에 박힌 사고로는 큰 인물이 되기에 부적합하다’는 선생님 지론이 김 의원의 학창시절 무용담에 불을 지폈다.   그가 조금은 난해하게 보낸 그 시절을 신명이 나서 풀어놓기 시작한 것이다.
김 의원은  자유로운 영혼 덕분에 여러 번 퇴학당할 뻔 했던 위기와 그런 자신을 지켜주셨던 선생님들, 특히 장 선생님에 대한 감사함을 토로했다. 그러면서도 경직된 대한민국 교육 풍토에서 무사히 살아남은 스스로를 대견스러워하는 자부심도 얼핏 내비쳤다.


정치적 입장이 달랐지만  척척 죽이 맞는 건 이   역시  추억의  힘일까  싶었다.   
오후 본회의 일정에 예정된 국회 상임위원장 선출 건만 해도 신기할만큼 이견이 없었다.  지난 번 당내 선거에서 아슬아슬한 표차로 당대표를 놓친 김 의원에게 느끼는 동병상련이  한 몫 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당원선거에서 다 이겨놓고 모바일 선거 때문에 밀려난 그나 역시 당심에서 이기고도 여론조사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한 나의 처지가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각기 미국에서 10여년 넘게 체류한 또 다른 경험이 우리의 대화를 풍성하게 이끄는 재미도 쏠쏠했다. 우리가 본 미국의 저력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고민하는 고준담론이 거침없이 이어졌다.
번개처럼 지나간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어느 모임보다 유쾌한 한 때였다.

점심을 마치고 걸어 나오는데 김 의원이 “내가 당대표가 됐으면 박근혜 후보의 대통령 당선은 어림도 없었을 것”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면서도 ‘대선판에서는 조직본부장이 꽃이니 열심히 하라’는 격려로 선배로서의 따뜻한 정을 보였다.
차를 타고 떠나기 직전에는 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김 의원 자신도 그동안 엄청 많은 정치적 사선을 넘어 왔는데 그나마 이 정도 살아있게 된 건 수많은 사람들의 견제와 시기, 모함 덕분이었다고, 그런 갈등과 아픔을 정치적 자산으로 생각한다는 고백이었다.
아마도 나 역시 그런 정치적 상황에 놓일 가능성이 있으니 그럴 경우 긍정적 에너지로 바꿔 활로를 찾으라는 나름의 조언이었다. 
감사한 마음으로  그의 말을 가슴에 담았다.
오늘의 점심은  근래 들어 가장 비정치적인 자리였는데  가장 심오한 정치적 수사를 건진 셈이다.  
                    
                                                                                      
(2012.7. 9)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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