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4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아버지

아버지
구순이 지난 아버지와는 해를 더할수록  친밀함이 깊어지는 것 같다.
이제는  아들 앞에서  긴장 푸시길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뵐 때 마다  '아프다, 자신이 없다...' 어리광으로 반가움을 대신하신다. 
젊은 시절  아버지를 떠올리면 천지 개벽 만큼이나 달라진 상황이다.
 다행인 건 아버지의 '레파토리'가 여전히 건재하다는 사실이다.
그럴  때 만큼은 예전의 아버지를  만나는 느낌이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반복돼도 기꺼이 아버지 말씀을  경청하게 되는 이유다.

신년 첫날, 세배를 드리러 찾아뵀을 때도 예외없이 아버지는 당신의 레파토리를 펼치셨다. 
이번에도 할아버지 함자를 둘러싼  집안내력으로 운을 떼셨다.  
아버지 말씀에 따르면   할아버지는 일제 치하에서  독립운동을 하셨다. 
만주일대를 돌면서 독립자금을 모아야 하는 임무 때문에  '홍 재자 경자' 본명을  갖고도 이를 사용할 수 없었다.  그 시절 독립운동가들의 사정이  다 그랬듯,  매번 다른 이름을 써야 했고  정상적인 가정생활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우리 집안이 통일된  돌림자를 갖지 못하게 된  배경에  나라 잃은  통한이 서려있는 셈이다.  
식민지배 민족으로서의 고통은 아버지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버지의 손톱과 발톱은 본래의 형체를 잃고 일그러져 있다. 
일제 치하에서 대나무 꼬쟁이로 당한 고문의 흔적이라고 하신다.  
언제 다시 보여줄 수 있을 지 모르겠다며 당신의 손톱과 발톱을 내미시는 아버지의 모습에 비장함이 묻어났다. 
고문자가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이었기 때문에 더 고통스러웠다고 당시를 술회하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런데 해방이 되고 보니  그런 자들이  경찰이 되고  총경이 되고 서장이 되어  출세가도를 달리는 기막힌 현실이 펼쳐지더란다.
일제 잔재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탓이었다.   

"일본은 절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다.  여전히 식민지배 야욕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그들이다.  지금 일본이 우리  시도 지자체와 결연을 맺어 우의를 나누는 것처럼 보이지만  일제시대와 마찬가지로,  아니 임진왜란과 만찬가지로 대한민국을 속속들이 연구하면서 다시 침투할 시기만 노리고 있다.
한시라도 일본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말고 내 나라 지키는 일에 최선을 다하라.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서의 마음가짐을 흐트러뜨려서는 안된다. 
특히 아베를 나쁜 놈이라고 욕하지 말라. 아베는 확신범이다.
자기 생각을 진실이라고 믿고 실천에 옮기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늘상 들어오던  아버지의 당부가  유난히 더 장엄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부쩍 연로해지신  모습에  가슴 한 켠이 쓸쓸해진다.                                                      (2015. 1.  3)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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