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12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지도자의 새로운 덕목


지도자의 새로운 덕목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10여년 유학생활도 했으니 당연할 수도 있지만, 평소 영어를 잘 한다는 소리를 듣는 편이다. 심지어 ‘너처럼 영어를 잘하는 한국인은 처음 봤다’고 놀라워하는 원어민도 있었다. (덕분에 현지에서 목사님이나 선교사님 통역을 도와드릴 기회가 많았는데 ‘종교적 자유의 대부’로 유명한 故 제리 팔웰 (jerry falwell) 목사님도 그 중 한 분이셨다)
그럼에도 영어는 여전히 내게 핸디캡으로 작용하는 존재다. 강단에서 영어로 가르치거나 이국에서 연설할 기회가 적지 않은데 상황마다 천당과 지옥의 간극을 보이니 하는 소리다.  모국어가 아닌 현실적 한계라고 위안하기도 하지만 솔직히 입맛이 쓸 때가 많다.

그런 배경 때문인지 주변인들의 영어실력을 눈 여겨 보게 된다.
그 중 생각나는 몇 분의 영어 실력에 대해 촌평해보겠다. (여담일 뿐이니 나무람 없이 웃고 넘겨주시기 바란다)
지금껏 만났던 사람 중에서 영어 통역을 제일 잘했던 이로 기억되는 인물은 DJ의 하버드 연설을 통역했던 최성일 교수다. 평소 호흡을 잘 맞춘 탓인지 DJ의 숨소리까지 통역하는 실력을 보여줬다.
그런데 완벽한 ‘콩글리쉬’로 좌중을 사로잡는 카리스마하면 단연 DJ다.
80년대 무렵, ‘나이트라인’이라는 미국의 유명 방송에 출연한 DJ가 라이브로 진행되는 영어를 다 알아듣는 모습에 놀란 적이 있다. 그러나 의중을 전하는 그의 영어는 옥중에서 독학한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DJ의 영어실력은 대통령이 된 후에도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미국을 방문한 DJ의 영어연설을 한 상원의원 방에서 들었는데 미국인인 그도 한국인인 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나중에 상원의원이 내용을 말하기에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었더니 미리 배포된 텍스트를 보여주었다. 상대적으로 YS의 경우, 직접 영어를 구사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 그의 실력을 평가하기가 애매하다.  다만 하버드에 있을 때 그곳을 방문한 YS의 대화를 들은 적이 있는데 당시 통역사가 대충대충 건성으로 통역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던 정경이 떠오른다. 
유학시절 같은 클래스에서 수업을 들었던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그 당시 이미 외교관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의 영어실력을 평가하자면 영어울렁증에 시달리던 동세대에 비하면 거의 최고였다. 하지만 그 역시 그 때만해도 ‘콩글리쉬’ 반열을 벗어날 정도는 아니었다. 동문수학했던 박진 전 의원의 영어는 뛰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잉글리쉬에 근접한 콩글리쉬로 영어를 잘하는 외국인 정도의 평가가 적합하다는 생각이다.
현역 국회의원 중에서는 길정우 의원과 이재영(비례대표) 의원이 대단한 실력을 갖고 있다. (미국에서 공부했다는 한 다선의원은 내가 보기에 별로인 실력인데  본인 생각은 다른 것 같다. 그래서 볼 때마다  진실을 말해야하나 말아야하나 늘 갈등하게  만든다) 전직 의원 그룹에서는 오세응, 유재건 의원이, 그리고 이홍구 전 총리가 그 세대 기준으로는 훌륭한 영어 실력을 보여주셨다.

엊그제 텔레비전을 통해 지켜본 박근혜 대통령의 미 의회 영어 연설은 생각보다 뛰어난 실력이어서 놀라웠다. 확실하게 마스터한 ‘정통종합영어’로 완벽한 발음과 문장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서 평소 대통령의 성실함과 진지함이 고스란히 묻어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의 영어 실력이야말로  이번 방미일정  곳곳에서 빛을 발하며  기능이상의 역량을 발휘한 숨은 공신이라는 생각이다.   통역 없는 직접 대화로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미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던 박대통령의 외교현장은 우리 모두가 공중파를 통해 목격한 그대로다.  
 무엇보다 언어야말로 세밀하고 직접적인 교감을 통해 상호간 이해의 영역을 넓힐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소통수단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하는 계기가 됐다.  지도자의 덕목으로 외국어가 비중있게 다뤄져야 할 당위성에 대해서도 새삼 주목하게 해 주었다. 
  
아무리 살펴도 당분간 세계 공용어로서 영어가 차지하는 위상에 변동이 생길 것 같지는 않다.  좋건 싫건 영어를 공부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건만 아직도 영어 공포증에 시달리는 이들이 많다. 무섭다고 피해서 해결될 일도 아니니 차라리 즐기는 마음으로 정복에 나서라고 권할 수 밖에 길이 없다는 결론이다.
모두가 아시겠지만 영어엔 왕도가 없다. 호락호락하지도 않다.
그렇게 고약한 영어의 주인이 되려면 우선은 스스로가 미국인으로 빙의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런 다음엔 완전히 정복 될 때까지 온 몸으로 외우고 또 외우고 외우고 또 외우는 반복으로 끝없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내겠다는 단단한 각오가 필요하다.   
"There is no royal road in English!!"                     

(2013. 5. 12)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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