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20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노장의 조언


노장의 조언


인터넷에서 뉴스를 검색하는데 남재희 전 노동부장관의 인터뷰가 눈에 들어왔다.
대한민국 정치사가 농밀하게 녹아있는 80 노장의 짧지 않은 인터뷰에는 가슴에 담을만한 내용이 많았는데 그 중 생각의 여지를 주는 대목을 소개하고자 한다.

하나는 박근혜 당선인에 관련한 언급이다.
남 전 장관은 3년 전부터 박근혜 당시 후보의 당선을 예견했는데   이번  인터뷰에서  그 이유를 밝혔다. 
“첫째 엄청난 경상도 배경을 갖고 있다. 이회창의 경우 경상도 지지가 약하지 않았나. 한국정치는 지리학이야. 둘째 여전히 월남민과 그 후손들의 영향력이 강하다. 이들이 진짜 보수의 원류야. 1당 10이야. 셋째 한국 프로테스탄트가 보수다. 이 세 가지 섹터만 봐도 우파인 박근혜가 되는 거다."
충분히  동의는 하지만  ‘당분간’이라는 전제가 불가피하다는 생각이다.  한두 번 정도는 몰라도 지속적인 영향력을 기대하기에는 현실이 녹록치  않다. 
세월은 월남 1세대의 소멸을 초래하고  이로인한  실향민의 결속력 약화는 불을 보듯 뻔한 미래다.   거기다 기독교의 사회적 영향력  역시 갈수록 그 입지가 좁혀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일정기간은  몰라도  조만간 수정을 요하게 돼 있다는 측면에서 그의 발언은 정치현장에 있는 사람들, 특히 보수진영에서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하나는 남 전 장관이 이승만 대통령 정권 당시 2인자였던 이기붕에 대한 시각을 드러낸 대목이다.
1957년, 이승만 대통령의 양아들이자 이기붕 국회의장의 친아들인 이강석의 부정 편입학에 반대해 동맹휴학을 주도했던 그는 인터뷰에서 ‘돌이켜보니 이승만이 싫어서보다는 이강석이 이기붕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반대했던 심리가 더 강했다’고 토로했다.
훗날 4.19가 이승만 정권붕괴의 결정타로 작용한 역사적 배경을 생각할 때 당시 학원가 소요가 당사자인 이승만 대통령보다는 2인자인 이기붕 때문이었다는 그의 고백은 충분히 자극적이었다.  정치 리더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고민 해봐야 할 관점을 일깨운 의미에서 말이다.

이승만 정권을 실패로 규정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요 패인으로 이기붕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 분위기다.  비단 이기붕 사례 뿐 아니라   대부분 부정적 측면의  영향력으로 회자될 수 밖에 없는 게  2인자의 숙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권에서건  2인자가 존재했다.
숙제처럼 남는 정치적 딜레마다.
그런 점에서 뚜렷한 2인자를 용인하지 않았던 ‘박정희 식 용인술’에 관심이 간다.    박정희 정권 당시 2인자를 자처하는 이들은 많았지만 명실상부한 2인자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게 정설이다.   실제로 김종필, 이후락 등 박정희 전 대통령 곁에서 한 시절을 풍미했던  이들도  스스로가 2인자연하는 순간 그 자리에서 밀려나는 모양새였다. 
2인자 군 형성으로 예상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리더 나름의 고육지책이었을까? 

갈수록 2인자 역할에 대한 리더의 세심하고 합리적인 철학이 요구되는 추세다.
절대적 충정을 내포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2인자 조력에 의존하기보다는  분야별 전문성이 확보된   시스템으로  영향력을  주도하는 리더십이  실질적인  힘을  갖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승만, 박정희 시대에 비해 대통령 역할이 많이 축소된 상황도  기존의  2인자 논리를  시대에 걸맞지 않는 흘러간 옛노래로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다.   대통령과 호홉을 함께 하는 핵심 인력이 있겠지만 적어도 전지전능한 대통령과 이를 떠받드는 2인자의  존립 가치는  의미를  잃고 있는 게 분명하다.   더 이상 존립해서도 안되고 또 실현될 수도 없는  완강한 구조로의 변화다.
  
노장의 조언 덕분에  건져올린  깨달음이  있다. 
 새로운 시대를 접수하고자 하는 리더에게  구태를 고집하지 않는 발빠른  적응력을  경쟁력 항목으로  더 추가해야 한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2013. 1. 20)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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