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21일 수요일

부모님 회혼(回婚)에 부쳐

부모님 회혼(回婚)에 부쳐
"사랑합니다"
부모님을 떠올릴 때마다 애틋한 사랑의 고백이 절로 되뇌어 지는 건 나만의 경험이 아닐 것이다.
화수분처럼 쏟아주신 사랑에는 감히 견줄 수 없지만 부모님을 생각하면 늘 가슴이 뜨거워진다.
깊어진 주름살로 환치된 부모님의 고단한 삶이  자식들에 대한 헌신으로부터 비롯됐음을  알기 때문이다.
부모의 이름을 가둔 천형의 굴레가 이리도 가혹한 줄은 처음엔 몰랐다.
특히나 정치하는 자식을 둔 죄로 언제나 바늘방석을 감내하시던 내 부모님의 마음고생은 남달랐을 것이다.
그래도 언제나 내색 없이 헌신과 사랑으로 뒷바라지에 전념하시던  세상 최고의 가치를 애면글면 눈에 밟히는 자식들을 품고 나서야 비로소 볼 수 있게 됐다.
아이들에게도 고백한 바 있지만 나는 도저히 부모님의 사랑을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다.  
부모님이 내게 주신 것처럼 내 아이들에게 해 줄  자신이 없다. 
    
한없이 투박하고 무뚝뚝하기만 하셨던 아버지.
세상의 모든 두려움으로부터 듬직한 방패막이를 자처하며 가족을 지켜낸, 완벽한 남자였고 가장이셨다.
좌중을 휘어잡던 카리스마, 도저히 뛰어 넘을 수 없는 산 같은 존재감은 어디로 갔을까...
그 모습 그대로  영원할 줄 알았는데 어느 새 구순을 넘긴 노인이시라니 인생이 무상하다.
하지만 인생의 고비마다 툭툭 던져주신 아버지의 가르침들은 지금도 내 삶에 영향을 미치는 자양분이 되어 있다. 
특히 십여 년 전 (여당 수뇌부가 움직인 정황 등으로 정치적 탄압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사건에 휘말려 시달릴 당시, 내 방을 찾으신 아버지의 모습은 화석이 되었다.  
그 때 아버지는 일제치하에서도 떳떳하게 살아온 내가 치욕을 당하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비장한 표정을 지으시더니 학교에 관한 어떤 허물이라도 너는 책임질 이유가 하나도 없다. 네가 여기서 혹여 아버지와 학교를 위한답시고 경솔하게 행동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이 최고의 불효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라고 당부하셨다.
그러면서 너는 나를 위해 죽을 수 없지만 나는 너를 위해 죽을 수 있다. 아마 지구상에 유일하게 너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나일 것이다고 덧붙이시는 아버지를 붙들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던  기억이 생생하다.
    
통 큰 후원과 넘치는 에너지로 세상을 열어주시던 어머니.
어떤 상황에서든  나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은 적이 없는 무한 믿음 공급으로 내 기를 살려주신다.   
무릎이 헤질 때까지 아들의 성공을 위해 기도하시는 어머니의 그 정성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어린 날 어쩌다 동네에서 딱지와 구슬을 다 털리고 세상사는 재미를 다 잃은 듯 처져있으면 당시로선 상당한 거금을 선뜻 쥐어 주시며  재도전을  권면하셨다. 이번에 안되면 다음에 하면 된다는 말씀도 빼놓지 않으셨다. 중학교 시험에 낙방하고 비실거릴 때도 그깟 일에 기죽을 필요없다. 너는 꿈(태몽)이 좋아 뭔가 꼭 될 거다라며  배포를 심어주셨다.   (그 때 모교인 수송초등학교를 걸어 나오다 어머니 손에 이끌려 들어간 사진관에서   찍은 사진은  본의아니게  '낙방기념' 사진이 되고 말았다)   엄하기만 하던 아버지 앞에서 주눅이라도 들어 있을라치면  한없는 자애로움으로 토닥이며  감싸주시던 기억도 난다. 
오늘 날 세상사를 좀 더 느긋한 관대함으로 기다리거나 관조할 줄 알게 된 건, 또 배포를 갖게 된 건 어머니의 가르침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다또 살아가면서 어려움에 봉착하는 순간마다 어머니를 간절히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출구를 찾은 경험이 적지 않은데 이 역시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 부모님들이 벌써 회혼을 앞 두고 계시다.
결혼해서 함께 하신 세월이 60년이라니, 두 분의 인연이 참으로 복되다는 생각이다.
무엇보다 이런 부모님을 모신 우리에게도 크나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다만 구순을 넘기거나 구순을 앞둔, 적지 않은 두 분의 연세를 생각하니 가슴 한쪽이 아릿해진다.
부모님을 더 잘 모셔야 하는 장남으로서도 그 소임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이 여간 아니다. 
특히 정치일선에 나와 있는 아들 때문에 늘 노심초사 하시니 송구한 마음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어머니, 지금처럼 두 분 해로하며 오래오래 사세요.
저희들 지금까지 잘 길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들의 헌신이 아니었다면  저희들의 오늘은  결코 존재할 수 없었음을 고백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2014. 5.20)

                                       ...홍문종 생각​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