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25일 월요일

홍문종 생각 - 돌직구 세상

돌직구 세상 
 


돌직구 과잉 시대라고나 할까, 솔직함을 무기로 날것의 상황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정면승부에 나설 일이 그만큼 많아진 탓인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너도 나도 돌직구 대열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정치판 상황이 걱정된다.
이로 인해 야기될 사회적 혼란과 폐해가 만만치 않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천주교 시국미사 강론에서 대통령 사퇴를 요구하며 북한의 연평도 포격이 정당하다고 옹호하는 원로 신부의 ‘돌직구 발언’이 정국을 급속도로 냉각시키고 있다.
그는 한일 간 독도 상황에 빗대 ‘NLL(북방한계선) 문제 있는 땅에서 한·미 군사운동을 계속하면 북한에서 쏴야하는데 그것이 연평도 포격사건’이라고 말했다. ‘NLL은 북한하고는 아무 상관없고 휴전협정에도 없다‘며 사실상 NLL의 군사분계선 기능을 인정하지 않거나 북한의 천안함 폭침을 부정하기도 했다.
노 사제의 ‘돌직구’가 진영논리에 따라 극명하게 평가가 엇갈리며 갈등과 반목의 불씨로 전개되는 건 불을 보듯 훤한 결과다.

무엇보다 ‘양날의 검’으로 작용하는 돌직구의 속성이 문제라는 생각이다.  
위기상황을 돌파해내는 해결사가 되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 패인으로 작용하는 특성을 모르지 않을 텐데 관중의 욕구는 무서울 정도로 집요하다. 날렵한 돌직구 한 방으로 상대진영을 말끔하게 정리할 수 있다는 자기 안의 유혹 역시 떨쳐내기 어려운 화근임에 틀림없다. 이로 인해 지불해야 할 대가를 생각하면 마땅히 거부해야 하는데도 결코 쉽지 않을 터다. 세상 일이 다 그렇듯 결코 간단히 승부가 결정될 일도 아니다.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건 지고 있는 상황에서건 손실을 감당해야 할 책임량은 다르지 않다.
이 또한 조금만 더 객관적이어도 파악할 수 있는 일이기에 허망한 결론이 민망한 건 나만의 기분일까? 

오랜만에 정치 선배님들을 모셨다. 
정치판을 쥐락펴락하며 하늘같은 존재로 군림하던 이들이다. 한 시대를 풍미하고  일정한 경지에 올라있는 분들답게 뵐 때마다 남다른 감회를 느끼게 하는 포스의 소유자들이다.  특히 오랜 경륜으로 체화된 이들의 정국 해법은 비할 바 없는 가치로 소중한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후배는 후배대로 동료는 동료대로 의미 있는 만남이지만 구태여 즐거움의 크기를 따지자면 선배님들과 소통하는 시간을 꼽게 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오늘도 예외 없이 선배님들의  말씀을 경청하는데 걱정이 깊으셨다.   유난히 돌직구성 해법이 많았는데  최근의 경직된 정국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낭만과 풍류로 여야갈등을 풀어내던 시절을 그리워하거나 날로 각박해지는 정치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오늘 날 정치권에 돌직구가 만연된  건 결국 낭만과 풍류가 실종된 결과라는 그들의 생각에 공감하게 된다. 
개인적 경우만 해도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같은 은사님을 모신 고교 선배고 전병헌 원내대표는 함께 기억하는 교수님이 적지 않은 대학후배다.  사적으로 만나면 마냥 정다운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정치판에만 들어서면 견원지간처럼 으르렁거리며 서로를 할퀴어야 하니 사람 할 짓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던 터였다.
      

정치의 후진은 정치인 당사자 못지않게 환호하는 관객의 잘못도 크다.  
후원과 지지라는 명목으로 상대를 향한 야멸찬 돌직구로 존재감을 과시하라고 요구해서는 안된다.  대리만족을 위해 정치인을 검투사로 만들고 정치판을 사생결단의 장으로 몰고 가는 관객의 천박한 호기심이 절대적인 화근이다. 정치는 로마의 원형경기장에서처럼 죽고 죽이는 검투사들의 싸움터가 아니다. 누군가 피 흘리며 쓰러질 때까지 비수를 휘둘러 승부를 결정하는 전투장이 아니다.
열광을 위해서라면  오히려 시 낭송이나 합창 같은 문화 프로그램의 기능이 더  효율적이다.   김연아나 류현진 선수 등이 활약하는  스포츠 경기도 있다.  그런 것들이   정치판 갈등을 부축이고 상대를 향해 응징의 칼날을 날리게 부축이는  뒤틀린 의식보다  대한민국 정치발전을 위해 백배 나은 처방이 될 것이다.   
상대에 위해를 가하고 상대방 숨통을 끊어야 비로소  만족하는 진영 논리 대신  자신과의 싸움에서 최선을 다해 국민을 감동시킬 수 있는  정치 구도를  짠다면  국민 전체가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행복 지킴이로 거듭날 수 있다고  자신한다.  
남을 죽여야 비로소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는 지금의 정치로는 암울한 현실에서 단 한 발자국도 더 나갈 수 없다.  고품격 정치는커녕  투쟁의 선봉에 서는 불행한 역사의 반복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불합리한 측면의 시국선언에도 불구하고 사제들에 대한 존경의 염을 거둘 생각은 없다.  
다만 좀 더 합리적인 판단과 처신으로 그들의  선택이 후회를 남기지 않게 되길 바랄 뿐이다.
그럼에도  정치판을 향해 사제들이 던진 돌직구는 어떤 형태로든 후유증을 남기게 될 것 같다.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선혈이 낭자한 싸움을 거친 다음 정리될  것 같은 예감이다.  
원형경기장 한가운데에  서  있는 나로선  심각하게 우려되는 부분이다.
해법이 있다면 국민들 스스로가 나서서 이 싸움이 수준높은 게임으로 승화될 수 있도록 살피는 길이다.  
더 이상 역사를 퇴행시키는 정치싸움을 원하지 않는다고 강력한 메시지로 가로막는 행동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을 경우 걷잡을 수 없이 대한민국 전체가 휘말리게 되는 불행한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  
어떻게 전개될까,   걱정이다.      

(2013. 11. 24)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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