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3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한가위 단상


한가위 단상

올 추석은 유난히 가라앉은 분위기로 지냈다.
가족이 모여 식사를 하고 윷가락을 던지며 노는 명절 풍경은 예년과 다름없었지만 온종일 허전하고 쓸쓸했다.  요즘 들어 부쩍 연로해지신  부모님과 군복무다 공부다  흩어져 있는 자식들의 부재가 가슴 한쪽에 바람구멍을 뚫어 놓은 탓이다.
부모님과  자식들 사이에 끼여있는  삶이  버겁게 느껴지는 하루였다.

돌아보니 애면글면 눈에 밟히는 애물단지들을 가슴에 담고서야  비로소  철이 들었다. 
부모란 이름에  때때로  천형의 굴레가  씌워지기도 하고   깊어진 주름살과 굽은 등에 담긴 부모님의 고단한  삶이  폐부를 찌르는 아픔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정치하는 자식을 둔 죄로 언제나 바늘방석을 감내하시던 부모님,  당신들의 헌신이 아니었다면 오늘의 저는  결코 존재할 수 없었음을 고백합니다. 
아버지는 투박하지만 믿음직한 부성으로 세상의 모든 두려움으로부터 나를 지켜주셨다. 그러면서도 유학 중이던  자식을 만나기 위해 한달음에 미국으로 날아와 뜨거운 가슴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 때 아버지 모습이 눈에 선한데 어느 새 구순의 노인이 되어 버리셨다.
그리고 내 어머니.
언제나 든든한 원군이기를 마다않고 넘치는 에너지로 세상을 열어주시던  어머니는 내 인생의 ‘0순위’다.
무릎이 헤질 때까지 평생토록 아들의 성공을 위해 기도해 주셨다. 언제나  믿어주시고  끝없는  사랑도 주셨다.  어머니의 그 정성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너무 많이 굽어버린 어머니의 등이 슬프다. 

쓸쓸한 명절이었지만 말미는 충만했다.
한밤중 산책 삼아 나선 여정에 동반자를 자처한 보름달의 퍼포먼스 덕분이다.
휘영청 밝은 달을 향한 저마다의 속살거림이 감미로운 음악이 되어 마음에 평정을 주는  이 밤, 오래된 질서를 평정하는 내공 덕분에 풍요로움을 만끽하고 있다. 중구난방 흩어지려던 깨알 같은 사연들을 가지런히 줄 지어 세우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부드러운 위로로 하나의 달을 바라보는 수없이 많은 눈길의 부담을 덜어내는 센스가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이다. 
오늘 밤, 처녀 총각은 좋은 반려자를 찾기 위해, 부모들은 자식의 행복한 미래를 이유로, 현인은 현인대로, 범인은 범인대로, 그 와중에 한자리 꿰찬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소원을 빌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밤하늘을 봤다면 분명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저마다의 소원이 곧 이뤄질 거라 약속하는  보름달의 속삭임을. 

아우라에 둘러싸인 보름달의 둥근 곡선이 염화시중의 미소를 떠올리게 했다. 다른 이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는 힐링 미소였다. 그 미소에 홀려 보름달과 마음을 나누니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기도가 절로 나왔다.
부모님이 강건하심과 자식들의 안위를 위해 기원했다.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지도자를 위해 나의 최선을 다할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도 빼놓지 않았다.
나른하지만 평온함이 온 몸을 감싸는 이 순간이 행복하다. 
아마도 보름달이 내게 주는 한가위 선물이 아닐까 싶다.                                    

 (2012. 10.2)
  ...홍문종 생각 

ps:  인간의 소망은  놓인 처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서로의 다른 꿈이 상반적 입장으로  부딪히거나 몰이해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선악의 기준치가 뒤바뀔 수도 있다.  같은 집단에 속해 있어도 마찬가지다.
오늘 밤 기도하면서   그런 경험을 했다.
최종적인 목표 실현도 중요하지만 성공을 향해 나가는 과정이 더 큰 희열일 수도 있겠다는 깨달음이 그것이다.  간절히 간구로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정진하는 노력이 더 큰 성공의 결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으로 유의미한  경험이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