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12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거들지 않은 죄

거들지 않은 죄
승승장구하던 남이를 모함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한 건 유자광이었다.
 
그러나 남이의 억울함은 유자광이 아닌 엉뚱한 대상을 향한 분노로 표출됐다.
 
팔순의 영의정 '강순'을 함께 역모를 도모했다고 거짓으로 고변, 저승길 동반자로 엮어버린 것이다.
 
왜 그랬을까?
 
형장에서 그 이유를 묻는 강순에게 돌아온 남이의 답변은 이랬다.
 
"원통한 건 너와 내가 같다.
 
영의정으로서 나의 원통함을 잘 알면서 한 마디도 변명해 주지 않았으니 죽어 마땅하다
 
 
 
처음엔 대체 무슨 억하심정일까? 왜 하필 내게...’ 원망이 컸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 시간을 되짚다 보니 고인의 입장을 헤아릴 수 있을 것도 같다.
 
두번에 걸쳐 도움을 요청했는데 두번 다 명쾌한 답을 주지 못했다.
 
언젠가 사무총장 시절, 선거법 재판을 도와달라고 찾아왔지만 달리 도울 방도가 없었다.
 
집권여당 사무총장인데, 청와대와 조율만 하면 간단히 처리할 수 있는데 왜 안 도와주느냐
 
달라진 정치환경을 이해하지 못하고 섭섭해 하는 눈치가 역력했지만 노력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기에 답을 주지 못했다.
 
또 한번, 지방선거 공천작업이 한창일 당시에도 그의 방문을 받았다.
 
선진당 몫을 요구하면서 자신의 지역구내 특정 후보에 대한 관심을 표명했지만 역시나 뚜렷한 해결책을 주지 못했다.
 
공천심사위원장이지만 공천여부를 내 맘대로 결정할 수 없다며 원론적인 입장 설명에 그쳤던 것 같다.
 
 
 
모르긴 몰라도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인사 중 몇몇에게도 비슷한 서운함을 느꼈던 건 아닐까 싶다.
 
나 역시 정치하면서 선거법 재판 때문에 여러 번 가슴 치던 경험이 있다.
 
예전 일기장 들춰보니 세상에 대한 원망과 야속한 심사가 피를 토하는 듯한 절규가 되어 담겨있었다.
 
나도 모르게 벌어진 일을 책임져야 하는, 하여 그동안의 모든 노력을 수포로 돌려야 하는 좌절의 순간, 무슨 짓이라도 하고 싶은 충동에 고심하던 흔적도 들어 있었다.
 
그 고통을 모르지 않으면서 조금 더 따뜻하게 위로라도 해줄 걸 그랬다.
 
결과야 달라질 수 없었겠지만 마음으로라도 조금 더 관심을 기울였더라면 좋았을 걸 후회가 된다.
 
당직자로서 당의 입장에 충실한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지만 그의 섭섭함을 돌아보지 못한 건 실책이었다.
 
 
 
안녕히 가세요. 명운을 빕니다.
 
당신이 날린 비수가 부당하다는 생각이지만 섭섭하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지난 일들에 대해 상처가 컸다면 용서를 구합니다.
 
당과 나라를 위해 바른 일을 한다는 소명의식의 발로였는데 곰곰 생각해 보니 타인의 아픔을 거두는 섬세함이 부족했네요.
 
부디 저에 대한 서운함을 풀고 저의 무고함, 해결될 수 있도록 누구보다 명확히 알고 계실 당신이 하늘에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더불어 이런 저런 과정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다고 했지만 본의 아니게 상처를 드린 이들에게도 혜량을 구합니다. (2015. 4. 12)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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