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 19일 목요일

홍문종 생각- 인연

엊저녁, 모처럼 두 분의 전직 총리를 만나 만찬을 나눴다.
오랜만이었는데도 편안하고 따뜻했다.
하버드 교정에서 동문수학하던 시절의 정겨움이 고스란히 되살려지는 느낌이었다.
오래 묵은 관계가 주는 일종의 특전인가 싶었다.
실제  서른 나이를 목전에 두고 있던 80년대 초반, 각각 30, 40대였던 그들을  처음 만났다.
그리고는 이내 친숙해졌다.
서로 다른 세대였던 점을 감안하면 자주 식사도 하고 테니스도 치며 교감할 기회가 많았던 것 같다.
함께 한 추억으로 책 한권은 너끈히 꾸밀 정도로 말이다.
 
두 분 다 대한민국 요직을 두루 거친 고위직 공직 출신 답게  국정 전반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현실 정치에 몸담고 있는 내게는 자극을 주는 내용도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팔순을 앞두고 있는 A가 오랜 경륜에서 묻어나는 혜안으로 건재한 노익장을 발휘하는 모습이 반가웠다. 아직은 공직영역에서 활동할 역량이 충분한 B의 흐트러짐 없는 처신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동계올림픽을 남북이 분산 개최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그렇지 못해 걱정이라는 조언이 가슴에 와 닿았다. 여러 면에서 대한민국이 정치적 이익을 얻을 수 있는 호기인데 진전이 있을 때마다 남북관계가 경직되곤 한다는 안타까움이었다.
그러면서 자신감을 가지고 추진할 수 있는 인력부재를 원인으로 지목했다.
대통령 주변부에 대한 걱정도 빠지지 않았다.   
대통령께서 정치그룹이 아닌 일반 국민들과의 소통을 통해 긴장을 푸실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는 등의  지적이 이어졌다. 대통령 직무 특성상 스트레스가 엄청나게 발생하는데 이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강구돼야 한다는 당위성에 대한  토로였다.
 
박정희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모셨던 경험을 들어 5년 단임제의 문제점이 지적되기도 했다.
A 전 총리에 따르면 박정희 정권은 초기의 시행착오를 거치고 난 이후 10년이 진정한 의미의 통치기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기간 동안의 업적이 박대통령을 위대한 대통령으로 평가받도록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야가 극렬하게 대립하는 5년 단임제 보다는 이원집정부제가 합리적이라는  입장을 개진했다. 다만 5년 단임제 개헌은 시기적으로 이번 정권에서 어렵게 됐다고 판단하는 듯 했다.
공직자 윤리의식도 도마 위에 올랐고 후진성을 벗지 못하는 정치현실에 대한 문제점도 지적됐다.
공직자는 정파적 이해관계를 떠나 국가라는 대의에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각오가 우선돼야 하는데 정치적 편견에 공직자의 순수성이 왜곡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공직과 사직을 오가며 권력과 재물을 양손에 쥐고 천수를 누리던 모씨의 경우를 들며 개탄을 금치 못하기도 했다.
 
인간은 자기를 알아주는 존재를 통했을 때 만개할 기회를 더 빠르게 얻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인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B의 조언이 귀에 쏘옥 들어왔다.
이 순간 나를 알아줄 사람은 누구고 또 내가 알아줘야 할 대상은 누구일까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다.
실제 그 자신 52세 때 공직에서 잠시 물러났을 적에  A가 이끌어주는 인연의 힘으로 승승장구했다는 B의 발언은 그의 공직 이력을 보면 결코 과장된 게 아니었다.
누구에게나 정상은 쉽지 않다.
두 분과 헤어져 돌아오는 내내 나를 사로잡은 화두였다.
​그러면서 뭔가 단단한 중심이 세워진 듯 며칠 사이 혼란스럽던 기운이 싹 가셔있었다.
 마치 큰 선물을 받은 듯.  
​상서로운 청양의 해라더니 좋은 징조다...                (2015. 2.18)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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