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10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 어디서 무엇이 되어

어디서 무엇이 되어


인간관계,  결코 수월하지 않고 흥미롭기도 한  명제다.  
안철수 의원과 최장집 교수의 ‘파경’에 천착하게 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십고초려’ 미담(?)을 바탕으로 한, 원로정치학자와 '새'정치인의 정치실험은 세인의 눈길을 끄는 화제작이었다.  장밋빛 덕담도 넘쳤다. 그러나 이들의 밀월은 80일을 넘기지 못하고 끝나 버렸다.   
그나마 안의원은 위장부부의 연이라도 잇고 싶었던 것 같은데  최교수의 협조가 용이하지 않았다.  급기야  ‘안의원과는 더 이상 연락도 안하고 자문에도 응하지 않는다’는 확인사살까지  감행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으니 하는 말이다.  정치세력화나 대중정치에 대한 복잡한 고민들로 골머리를 앓는 안의원의 입장을 모르지 않을 최교수로서는 다분히 의도적인 도발이라 하겠다.  
도중하차한 인간관계의 쓸쓸한 뒷모습이다.   

일찍이 東洋의 맹자는 ‘성공하려면 하늘의 때를 얻는 것보다도, 땅의 이치를 얻는 것보다도, 인화를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西洋의 셍떽쥐페리도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라고 자신의 저서 ‘어린왕자’를 통해 토로한 바 있다. 그들 말고도 동서고금을 넘나들며 인간관계의 가치를  설파한  혜안들이 많았다.  
인간의 삶에 미치는 영향력에 관한한 인간관계가 차지하는 위상에 대해 어느 정도 의견일치를 이룬 셈이다.   
‘각자의 얼굴만큼 다양한 각양각색의 마음에서 순간순간에도 수만 가지의 생각이 떠오르는데 그 바람 같은 마음을 머물게 한다는 건 정말로 어려운 일’이라는 ‘어린왕자'의 탄식에  백번 공감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인간을 향한 희망은 여전히 간절하니 무슨 조화인가 싶다.  그 순기능에 기대고 싶은 본연의 욕구가 깊은 탓이 아닐까 싶다.  관계라는 것이 누군가의 마음 얻는 일에서부터 시작되는데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만으로는 그 어떤 조짐도 장담할 수 없는 현실에 비춰보면 대단한 애착이 아닐 수 없다.
  
분명한 것은 더불어 사는 삶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그런  측면에서  우물 안 개구리는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  
무엇보다 제 눈에 담긴 풍경을 세상의 전부로 삼는  전제가 문제다. 갇힌 사고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각각의 개성도 좋지만 그것들이 어울림의 과정을 거쳐 나오는 성숙한 기량과는 비교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독창적 사고도 마찬가지다.   성공적 인간관계가 뒷받침 됐을 때만이 도약이 가능하다.  
다만 21세기라는, 새로운 세상을 향하는 관점에서 보면 장벽으로 받아들여질 개연성에 대한 고려는 필요하다.  
실제 세상살이가 복잡다단해지고 자기중심으로 바뀌면서 관계 속에서 연결고리를 찾기보다 타인은 타인일 뿐이라는 체념 속에 스스로를 가두는 형국이다. 창조적이고 독창적 아이디어를 강조하다 보니 혼자라는 자의식의 팽창이 기형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현실도 마찬가지다. 개인주의의 독특함을 21세기가 새롭게 요구하는 삶의 형태로 오해할 여지가 함정이 될  때가 많다.  

그래서 인연의 고리를 다듬고 가꾸는 진심의 가치를 높여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것이 한 다리만 건너뛰면 모든 인연의 연결이 가능해진 세상을 사는 올바른 대응이 아닐까 싶다.   
소통이 가능할 때 비로소 인간관계의 순기능이 열리게 되는 건 만고의 진리다.   특히 우리처럼  사람과의 결합을 직업으로 하는 정치인에게는 더 없는 가르침이다.  창조적 기업 경영으로 인정받고 있는 故스티브잡스나 빌게이츠의  오늘날도  인간에 대한 다양한 확률을 통한 인간 연구에 소홀하지 않았던 남다른 관점이 주효한 덕분이다. 
실제  인간관계를 주무대로 삼는  정치항로 속에서  기술이나 능력보다는 진정성이  더 큰 위력을 발휘하는 현실을 보게 될 때가 많다.  조금 과장한다면,    깊은 신뢰를 매개로  한 인간관계가  온전한  소통으로 일치되는  순간은 감동의 도가니다.  상대의 모든 것이   고스란히  받아들여지는 합일의 순간,  금방이라도 세상의 모든 갈등을 녹여낼 수 있을  것 같은 충만한 마음이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백아절현(伯牙絶絃), 백아와 종자기의 뜨거운 인연을 생각한다.  
마음을 알아주는 벗, 3명이면 성공한 인생이라고 하는데 나는 어떤가, 새삼 민감해진다.
그런데 어깨를 툭툭치는  작은 속삭임이 나를 에너자이저로 만든다.    
"괜찮아...지금 잘하고 있어"                       

(2013.9.10.)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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